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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04.28

강조의 정변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 목종 때 강조가 정변을 일으켰다고 알고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현종을 옹립했는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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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목종 12년(1009) 강조가 일으킨 정변.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 강조가 김치양(金致陽)의 반역을 들어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 순(大良院君詢, 현종)을 세워 왕위에 올린 정변이다. 목종의 아버지 경종은 두 왕후를 두었는데, 목종의 생모인 헌애왕후(獻哀王后, 뒤에 천추태후(千秋太后))와 헌정왕후(獻貞王后)로서, 이 두 왕후는 모두 태조의 아들인 욱(旭, 대종(戴宗)으로 추존)의 딸로 경종과는 사촌남매간이었다. 그리고 경종의 숙부이며 태조의 아들인 욱(郁, 안종(安宗)으로 추존)은 경종이 죽은 뒤 그의 질녀이며 경종의 왕후인 헌정왕후와 간통해 대량원군 순을 낳았다. 한편 목종의 생모인 헌애왕후는 경종이 죽은 뒤 천추궁에 거처했는데, 이때 외척 김치양은 거짓 중이 되어 천추궁에 출입하면서 추문이 있자 성종이 김치양을 먼 곳으로 장배(杖配, 장형을 가하고 유배함)했다. 그러나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자 헌애왕후가 섭정을 해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하고 김치양을 소환, 중용했으며, 1003년(목종 6)에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아들이 생기자 목종에게 아들이 없음을 기화로 그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 했다. 이들은 당시 태조의 유일한 혈통인 대량원군 순을 경계해 강제로 출가시켜 여러 차례 독살을 시독하기도 했으며, 1009년에는 목종을 살해하려고 대궐에 불을 놓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목종은 이러한 음모가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신혈사에 있던 대량원군 순을 맞아오게 하는 한편 서경의 서북면도순검사 강조에게 명해 상경(上京)을 호위하게 했다. 강조는 왕명을 받고 개성으로 오던 중에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자신이 천추태후에 의한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해 서둘러 본영으로 되돌아갔으나, 다시 정난(靖難)의 뜻을 품고 군사 5천 인을 이끌고 개성으로 향했다. 평주(平州, 평산)에 이르러 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한때 주저하다가 목종이 살아 있는 한 천추태후와의 관계로 김치양 일파를 제거할 수 없다고 판단, 왕의 폐위를 결심하고 대궐을 침범한 후 대량원군을 맞아 즉위하게 하니 이가 곧 현종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고 김치양 등 7인을 잡아 베고 천추태후의 친속과 김치양의 남은 일파를 섬으로 귀양보냈다. 목종과 천추태후는 귀법사를 거쳐 충주로 추방되었는데, 적성(積城)에 이르렀을 때 강조가 보낸 사람에 의해 목종은 살해되고 천추태후는 황주(黃州)로 도망가 거기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 강조의 정변은 1010년 거란의 제2차 침입의 구실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조의 정변 [康兆-政變]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한국사사전편찬회)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7대 왕 목종이 18세게 즉위해 모후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자 귀양보냈던 천추태우의 정부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였고 목종은 20세가 넘도록 후사를 얻지 못했는데 1003년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어 이때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그들 사이에 난 자식으로 목종의 뒤를 잇게 할 음모를 꾸미고있었습니다.

    이 음모를 안 목종은 욱의 아들 당숙 재량군에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북면도순검사 강조에게 왕궁을 호위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때 나라 한에 온갖 뜬 소문이 유포되었습니다.

    임금은 병환이 몹시 위중해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고, 김치양 일파는 임금이 병중에 있음을 기화로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목종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어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몰아내고 목종의 뜻대로 대량군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려하여 강조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개경으로 오던 중 목종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어 입장이 난처해진 강종은 어차피 목종으로서는 나라를 흥하게 하기 힘들것으로 판단해 부하 제장과 논의 후 별장으로 하여금 대량군을 맞이하게 하고 자신은 개경으로 들어가 목종에게 퇴위를 강요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이 죽고 목종이 18세의 나이로 즉위 하였으나 그의 생모 헌애왕후가 섭정을 하여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척이자 내연남인 김치양을 불러들여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을 삼는등, 권세를 맡겨 백관의 진퇴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질운 시기에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김치양과 태후를 내쫗는 정변을 일으 킵니다. 이 정변이 비록 왕의 폐립을 자행하고 고려 왕을 살해하기는 했지만, 왕실의 기강을 바로잡고 왕권의 재정립을 기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정변은 거란의 제2차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는 처음에 목종의 명에 따라


    개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실에 반감을 가진 누군가가


    이것이 태후의 속임수라며 사기를 쳤고,


    강조는 이 말을 믿어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강조의 아버지는 목종이 이미 시해됐으니


    어서 와서 사태를 수습하라고 독촉합니다.



    이에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갑니다.


    하지만 목종은 살아있었고,


    졸지에 강조는 역적이 될 처지가 된 겁니다.


    그래서 그냥 왕을 갈아치우기로 결심하고


    대량원군 왕순을 데려와 현종으로 즉위시킵니다.



    즉, 반란군이 될 것 같으니 그냥 밀고 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