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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3.12.19

조선시대에는 청자가 만들어지지 않았나요?

청자라고 하면 흔히 고려 청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유명하기도 한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청자를 전혀 만들지 않았었나요? 아니면 적게 만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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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19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청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청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푸른색 자기를 말합니다.

    조선초기에 비색청자와 상감청자가 일정하게 생산 이용된 것은 최근에야 비로소 알려졌다고 합니다.
    조선청자는 잿빛도는 푸른색이 많기는 하지만 고려청자의 부드러운 푸른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일부 그릇은 고려청자보다 맑고 아름답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청자는 있었습니다.

    조선청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주 연대는 조선 초부터 중기까지이며 고려시대 고려청자를 계승했습니다.

    조선청자는 중반기까지 만들어졌고 양란 이후 소멸되어 양이 적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청자(朝鮮靑磁)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로서 주 연대는 조선 초부터 중기까지입니다.

    조선초기에 비색청자와 상감청자가 일정하게 생산 이용되었습니다. 조선청자는 푸른색이 많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푸른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 청자 가운데는 백자 바탕흙 위에 청자유약을 바른 것과 청자바탕흙 위에 청자유약을 바른 것이 있고, 그릇모양과 무늬는 고려청자를 닮은 것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려한 귀족 문화중심의 고려청자는 예상보다 유물이 많은데, 대부분이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난 사치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조선이 들어서자 동아시아의 백자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중국의 재료에는 미치지 못한 점도 있어서, 순수한 하얀 빛깔보다는 쉽게 만들어서 쓰는 내구성이나 소박한 멋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애당초 백자가 발달한 배경에는 도자기 기술의 발전 이외에도, 사치를 싫어하는 유교 문화의 바탕이 깔려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니요 조선시대에도 만들었습니다.

    조선청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푸른색 자기를 말한다. 조선초기에 비색청자와 상감청자가 일정하게 생산 이용된 것은 최근에야 비로소 알려졌다. 조선청자는 잿빛도는 푸른색이 많기는 하지만 고려청자의 부드러운 푸른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일부 그릇은 고려청자보다 맑고 아름답다. 또한 버들, 물새, 학, 매화, 국화, 물고기, 용, 연꽃, 봉황 등 상감무늬에서도 고려청자의 무늬와 같고 그 구도도 비슷하다.

    조선청자는 이와 같이 고려청자와 일련의 계승적인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그와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조선청자가 형태에서 맵시 있고 날씬하지는 못하나 듬직하고 소박한 것이며 굽이 낮으면서도 밑이 퍼진 형태는 고려청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제작수법으로 백자의 바탕흙에 청자유약을 바르고 상감을 위주로 하면서 무늬를 낮은 돋을새김으로 처리한 것 등은 고려청자와 차이나는 점이다. 조선청자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구름, 학무늬청자상감귀대’, ‘용무늬청자상감소반’, ‘어룡무늬청자상감병’, ‘국화무늬청자상감향로’, ‘구름돋을무늬청자바리’ 등을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은 조선자기가 바로 고려자기를 계승한 것이며 특히 조선 전반기의 청자는 곧 고려청자를 계승한 것이라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그것은 조선 전반기의 가마터들에서 청자기들이 적지 않게 드러난 데서 알 수 있다. 경기도 광주는 조선시대 자기생산의 중심지의 하나였다. 최근에 이 지방에서는 조선초기에 구어낸 순백자, 석간주백자, 청화백자와 함께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들이 드러났다. 광주군 반천리, 도마리, 우산리, 무갑리, 쌍령리, 도수리 등지의 가마터들에서 10여 점의 청자가 알려졌다.

    청자 가운데는 백자바탕흙 위에 청자유약을 바른 것과 청자바탕흙 위에 청자유약을 바른 것이 있고 그릇모양과 무늬는 고려청자를 닮은 것이 있다. 이것은 조선청자가 고려청자를 계승하면서도 백자가 생산 보급되면서 그 형태와 장식무늬를 본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17세기 초엽에 대전(왕이 거처하는 궁전)에서는 백자를 쓰고 동궁(왕세자가 거처하는 궁전)에서는 청자를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궁중에서 백자와 함께 청자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