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군은 주변 국가들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보유했습니다. 하지만 팔기군은 새로운 기술 혁신에 소홀했고, 유럽 군대에 비해 기술적인 면에서 뒤처졌습니다. 청나라 팔기군은 몽골군만큼 강력했고 주변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만큼 공격적이거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지는 않았습니다.
팔기군은 1601년 누르하치가 여진족 각 부족의 부대를 깃발로 구분하는 군단으로 재편한 것에서 출발하며, 만주족이 내몽골 고원으로 진출하면서 바요트 등의 내몽골 거주 할하 부족들인 내할하 부족들, 투메드, 차하르, 오르도스부 등 내몽골 출신의 몽골인 부족들도 이 시스템에 편입되었고, 이후로 요동을 함락하면서 한족도 이 제도에 편입되었습니다. 각 군단에 대한 지휘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는 청나라 권력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최종적으로 청나라가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확보한 이후인 옹정제 시기에는 팔기가 황제 아래에 모두 직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