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의 멸망에 대해서는 가야가 무력적으로 대항한 것이 아니라 왕과 왕자들의 자진 항복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써 신라 귀족 중 진골로써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습니다. 19년 금관국주 김 구해가 왕비 및 그의 세아들 맏아들 무종, 둘째 무덕, 막내아들 무력과 함께 금관국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여왔다. 왕이 예에 맞게 그를 대우하여 상등 직위를 주고, 금관국을 그의 식읍으로 주었다. 아들 무력은 벼슬이 각간에 이르렀다.라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