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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3.08.10

조선시대에 설치했던 측우기는 정확했을까요?

조선시대에 측우기를 설치해서 강수량을 측정했다고 하는데요, 현대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정확성이 떨어질 것 같은데, 얼마나 정확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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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류경범 과학전문가입니다.

    매우 정확했습니다.

    조선시대 측우기의 지름이 7촌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이는 약 15cm로 지금의 측우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또한 측우기 용기를 원형으로 만들었는데요, 용기가 클 경우 증발하는 부분이 많고 용기 자체를 만드는데 어려움이있으며, 항아리 모양이나 네모난 상자처럼 생길 경우 비가오는 방향에따라 담기는 물의 양이 달라질 수 있지만 원통은 360도 어느 방향에서 빗물이 들어오더라도 일정한 양이 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조선시대 측우기는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정하고있는 표준 오차범위 1% 이내의 규격에 해당되며, 세계기상기구에서는 강우량계는 수수구가 직경으로 13~20cm가 가장 적당한 것으로 정해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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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재훈 과학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측우기의 정확도는 현대의 측우기와 비교했을 때 약 10% 정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측우기의 재질과 구조가 현대의 측우기와 비교했을 때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측우기를 설치하는 위치와 높이를 표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측정 결과에 편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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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철 과학전문가입니다.

    측우기는 쉽게 말해 단위 면적당 강수량을 받아 물의 양을 측정한거기 때문에

    물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등에서 오차가 있을순있어도 현대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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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주척은 약 20.8 cm. 조선에서는 주척, 황종척, 영조척, 포백척 등등 여러 가지 척을 사용했고 각각의 길이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 문화재 복원시에도 기록된 척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는 30.3 cm짜리 척은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쓰이는 곡척(30.3 cm)을 받아들인 것으로 우리네 전통이 아니다. 다만 일본의 곡척이 조선에서 주척과 함께 자주 쓰인 영조척(약 30.8 cm)과 길이가 거의 같아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쉽게 받아들였던 점도 있다. 근대에는 서양의 도량형에 근접하는 도량형을 쓰려고 했다. 단적으로 고종이 1902년 발표한 1척은 30.303 cm였는데, 이는 미터법을 전근대 도량형에 맞게 도입하면서 1미터를 3.3척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30.303에 3.3을 곱하면 99.999가 나온다. 일본은 을사늑약 직전인 1909년에 강제로 조선의 도량형을 일본 도량형과 통일시키면서 무효화했다. 고종의 도량형은 일본과 별개로 형성되었는데도 30 cm에 근접했는데, 영국식 야드파운드법의 1피트가 30.48 cm인 것과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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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홍성택 과학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측우기는 현재의 기술 수준과 비교하면 정확도가 낮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의 측우기는 주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주로 나무나 돌 등으로 만들어진 간단한 장치였습니다.

    주로 관측자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기 때문에 정확도가 제한되었습니다. 또한, 측정된 데이터의 기록과 분석 방법도 현재와는 다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확한 예보를 제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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