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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2

풍수지리사상은 언제 우리민족에 퍼진 것인가요?

과거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를 많이 고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풍수지리사상은 언제 이렇게 대중화되었나요? 이게 우리민족 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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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부터 민간에 뿌리내렸던 토속신앙에서 비롯하여 현재의 풍수지리가 되어 이어져 내려왔다는 설이 대세이며, 이후 조선시대에 완전히 정착해 널리 퍼져나갔다고 한다. 다만 제도화된 풍수지리 사상 자체는 일단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풍수지리라는 말 자체가 중국어이며, 중국의 풍수 사상은 삼국시대보다 천년 이전 상주 시대에 등장했었고 이론으로 정립된 시대는 당나라 곽박의 금낭경에서 이론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산과 물의 형세, 동서남북의 방위 등을 고려해 입지가 좋은 곳을 찾게 되며, 이렇게 지리적 조건이 좋은 장소를 명당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명당에 묘나 집을 짓게 되면 자손 대대로 정기를 받아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보통 배산임수의 형지가 대개 명당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8.12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부터 민간에 뿌리내렸던 토속신앙에서 비롯해 현재의 풍수지리가 되어 이어져 내려왔다는 설이 유력, 이후 조선시대 완전히 정착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다만 제도화된 풍수지리 사상 자체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지리사상은 고조선의 단군건국이야기에서 전하는 풍백 우사 운사 등의 이야기부터라고 볼 수 있으나 이를 풍수라 이름 붙일 수 없고 삼국시대부터로 추정합니다. 중국의 도가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라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문에 등장하는 풍류도가 국선도 즉 선교=도교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 도선국사가 당나라에 가서 장일행이라는 선사에게 풍수지리학을 전수받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통일신라에서 태종 무열왕이나 김유신 장군이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를 이용했다고 하니 신라 왕실을 중심으로 풍수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풍수지리는 묏자리 명당을 찾는 음택풍수와 취락 집터 절터를 평가하는 양택풍수가 있는데 이는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국가의 흥망성쇠에 바탕을 지리도참설과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된 풍수지리설은 땅의 기운이 발복하여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상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드넓은 평야와 낮은 구릉, 그 뒤로 펼쳐진 높은 산 그리고 깊은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는 아늑한 삶의 터전. 동네 어귀에서 늘 바라보던 이런 모습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우리 선조들은 좋은 땅(명당)에 묻혀야만 자신의 대(代)에서 안녕과 부귀영화를 누릴 뿐만 아니라 자기가 죽은 후에도 후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이 풍백1)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신단수를 정했다는 기록에 풍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풍수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고려 시대에는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당나라에 가서 장일행(張一行)이라는 선사로부터 풍수지리학을 전수받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 통일신라 시대에 태종 무열왕이나 김유신 등의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지리설을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왕실을 중심으로 풍수가 유행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풍수는 중국의 서북 지방에서 유입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중국 사람 곽박2)이 쓴 『장경(葬經)』에 나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는 땅 밑을 흐르는 생기(生氣)를 잘 보존하고 이용하기 위한 술법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풍수지리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유교적 문화권에서 이용되는 일종의 지상학(地相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흔히 풍수라고 하면 묏자리를 잡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음택풍수(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전제하에 묘지를 선정하는 일)로 풍수지리의 한 분야일 뿐이다.


    풍수지리는 좋은 묏자리를 찾는 음택풍수와 취락, 집터, 절터를 평가하는 양택풍수로 나눌 수 있으며 음양오행설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오행설에서는 산의 형태를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로 분류하여 해석한다. 산에 지기(地氣)가 결집된 곳에 열매가 맺힌다고 하며 그런 곳을 혈(穴)이라고 한다. 풍수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명당(明堂)이란 말은 본래 황제가 신하의 축하를 받은 땅을 뜻하는데 청룡과 백호 등으로 둘러싸인 혈전(穴前)의 땅을 말한다. 즉 혈 바로 앞의 평평한 지형을 명당이라 부르며, 혈과 명당은 풍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이다. 전통 건축 양식과 비교하면 본채와 그에 부속된 앞뜰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출처 : 대단한 지구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