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통금 시간이 존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현재는 24시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일정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극을 보니 통금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조선시대에 통금시간이 존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간 통행금지는 전근대사회 여러 나라에서 대부분 실시되었던 제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실시된 적이 있습니다 전등이 발명 보급되기 전 등불 밑에서의 생산 활동은 물론 구매 위락 등 일체 활동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상 도시 주민들의 밤 시간은 휴식 내지 잠자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 시간에 높은 관료 이하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었고 조선시대에 야간 통행금지 제도가 언제부터 왜 시행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근대사회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치안상의 필요가 주된 이유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인정이 울린 뒤의 남성들은 의원을 부르거나 상을 당하는 등의 예외적인 사정이 있거나 순라군 같은 특별한 직업이 아닌 이상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통금이 시작되는 시간을 인정, 끝나는 시간을 파루라고 하는데 태종 때부터 초경 3점(오후 8시)부터 오경 3점(익일 오전 4시 30분)까지 금지였고, 세조 때 이경(오후 9시)부터 오경(익일 오전 3시)까지로 완화되었다. 원래는 명나라의 법을 따라서 파루 때만 종을 쳐서 알렸으나, 통금을 잡는 순관과 통금 시간이다 아니다 마찰이 있었는지 세종 때부터는 인정 때도 통금을 알리는 종을 쳤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인정이 울린 뒤 남성들은 의원을 부르거나 상을 당하는 등의 예외적인 사정이 있거나 순라군 같은 특별한 직업이 아닌 이상 밖에 나다닐수 없었습니다.
야간통행금지 제도는 치안상의 필요가 주된 이유로 전등이 발명, 보급되기 전 등불 밑에서의 생산활동은 물론 구매, 위락 등 일체의 활동이 제약받을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상 도시주민들의 밤 시간은 휴식 내지 잠자는 시간일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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