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근대 시기 남성의 헤어스타일이 상투를 한 기원이 언제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동아시아는 과거 민족에 따라 머리모양을 달리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근대 시기 남성의 헤어스타일이 상투를 한 기원이 언제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상투 풍습이 있었지만 특히 조선시대에서 상투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 예절과도 연결되어 더욱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상투는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상투관은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한 것 때문인데, 특히 머리숱 적은 노인들이 관을 쓸때는 상투에 거의 반드시 상투관을 썼으며 상투관 나무, 종이, 가죽, 뼈, 뿔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조그만 상투관 안에 상투를 집어넣으려면 상투의 사이즈가 작아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상투관을 쓸 때는 숱 정리가 더 필요했고신라시대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를 봐도 신분이 높은 주인은 관을 쓰고 하인은 상투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위만(衛滿)이 조선에 들어올 때 ‘추결(魋結)’을 하고 왔다는 기록과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 ‘괴두노계(魁頭露紒)’, 즉 관모를 쓰지 않는 날상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도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투는 어릴때에는 댕기를 드리다가 장가를 가면 머리카락을 끌어올려 정수리 부분에서 감아 매던 머리형으로 중국의 사기에 위만이 고조선에 들어올때 추결을 하고 왔다는 기록,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괴두노계 즉 관모를 쓰지 않는 날상투를 했다는 기록이있으며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나옵니다.
상투를 트는 것은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 남성으로서의 위엄 또는 과시의 목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