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종은 노비환천법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혁정책을 실시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원했습니다. 재위기간 내내 끊임 없이 공신 및 호족세력과의 대립 구도를 형성했고 특히 성종 때 만들어진 최승로의 시무 28조라는 정치개혁안 역시 이를 뒷받침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자 마자 다시 한번 반란이 일어나는데 이때 헤종의 둘째 아들이자 정종의 동생인 욱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가 오히려 패배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이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신료들은 다시금 광종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광종은 말년까지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