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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시라소니109
견실한시라소니10923.06.13

무신정변이 일어났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에 문신의 힘이 더 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신정변이 일어나면서 무신들이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는 무신정변은 왜 일어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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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정변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 귀족사회는 귀족들이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대토지를 겸병하는 등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지배층 내부의 항쟁이 야기되어 차츰 동요되어갔습니다.

    문벌귀족들의 지배체제는 왕권과 결탁하려는 지방향리출신 신진관료의 성장을 제약했고

    이는 다시 무반에 대한 차별로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문·무의 차별대우에 대한 무신들의 불만과 일반군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의종의 반무신·반유교적인 경향과 그의 실정은 정변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벌귀족과 왕족들과의 결탁으로 인한 차별과 불만이 정변이 일어난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란이 일어난 중요한 계기는 문무 간의 심한 차별이었다. 여진 정벌 이후 인종 대에 무신에 대한 멸시 풍조가 있었고 그것이 의종 대에 더욱 심해졌다. 무신 정중부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에게 수염을 태우는 모욕을 당하는 사건은 무신들의 불만과 감정을 축적하는 요인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신란 [武臣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신(학자)무신(군대)차별이 너무심해서 무신이 정변을일으켰습니다

    배경1:궁궐에서 축제를하고있는데 문신과 왕은 음식을먹고있지만 무신은 뒤에서 싸우고있음(차별이심하다는걸알수있음)

    배경2:축제중에 문신이 무신의대장군의 뺨을쳐서 무신이 화가나서 그랬습니다.

    배경3: 전쟁이일어나면 무신은 문신의말만들어야하기떄문에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란은 1170년(의종 24) 8월에 일어났다. 의종의 보현원(普賢院) 행차를 계기로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의 무신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날 의종은 무신에게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戲)를 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장군 이소응이 젊은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는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무신들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정변은 보현원에 이르러 이고와 이의방이 순검군을 집합시켜 의종을 수행한 문신들을 살해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평소 토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불만이 누적되었던 일반 군인층들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무신들에 의하여 정권이 장악되었다. 그러나 봉기의 주동자들이 치밀한 사전 계획을 가지고 정변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또 무신란은 고위 무신들이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국왕의 시위부대인 견룡군 소속 중급 장교들이 모의하여 일으킨 난이었고, 여기에 고위 무신이 참여한 것이다.


    무신란에는 신분이 미천한 무신들과 함께 일반 군인들이 대거 적극 참여하였다는 것이 주목된다. 중 · 하급의 무신과 일반 군인의 참여에 의하여 난은 원래 예상된 것보다 훨씬 과격하게 확산되어 다수의 문신들이 제거되고 국왕이 폐위되는 상황으로 진전된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문벌귀족사회 하에서 무신에 대한 차별대우가 꾸준히 존재 했었고,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온 게 1170년의 무신정변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에서 찾을수 있는데 고려 귀족사회는 귀족들이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대토지를 겸병하는 등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지배층 내부의 항쟁이 야기되어 차츰 동요되고 있었습니다.

    문벌귀족들의 지배체제는 왕권과 결탁하려는 지방향리출신 신진관료의 성장을 제약했고, 이는 다시 무반에 대한 차별로 연결됩니다.

    고려의 문, 무반은 같은 양반관리로 단일 관계체제 안에 일원적으로 편성되어 법제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있는데 실제 문반만이 귀족이 되어 정치권력을 독차지하고 , 군대를 지휘 , 통수하는 병마권까지 장악한 반면 무반은 귀족 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지위로 떨어져있었습니다.

    한편 일반 군인들은 전쟁시와 평소에도 공역에 동원되는 등 고역에 시달렸으며 전시과 체제의 문란으로 군인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 무의 차별대우에 대한 무신들의 불만과 일반 군인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에 의종의 반무신, 반유교적 경향과 그의 실정은 정변 발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1170년 8월 의종의 보현원 행차를 계기로 정변이 일어나는데 의종은 보현원 행차 도중 무신으로 하여금 오병수박 놀이를 하도록 시켰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자 문신 한뢰가 그의 뺨을 때린 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정중부 , 이의방, 이고 등은 보현원에 도착해 순검군을 모아 호종한 문관과 대소신하 , 환관들을 살해함으로써 반란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