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7일장 장날의 유래와 역사를 알고 싶어요.
도시에는 잘 모르겠지만 시골에는5일장과 7일장이라고 있는데 이런 장날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됐으며 이런 장날의 역사가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5일장은 5일마다 열리는 장을 말합니다.
5일장이 서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시대 15세기 말 시작한 열흘 간격으로 열리던 장시(시장)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수가 증가하여 17세기 후반에는 5일 간격으로 열리게 됩니다.
열흘간격이 닷새간격으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바로 보부상입니다.
부보상들은 생산된 물품들을 무리를 지어 혹은 개별적으로 지역을 정해놓고 짊어지고 다니는데 시장과 시장을 옮겨다니는데 알맞는 기간이 5일이었습니다. 17세기 후반부터 상업의 발달로 이 봇짐장수들이 활성화 되면서 시장도 한층 더 활성화가 된 셈이죠. 5일장은 한 지역에서 한달에 여섯번을 서게 되지만 큰 마을 단위로 서게되므로 한 군에서 보통 세군데에서 많은면 4-5군데서 장이 날짜를 번갈아 가면서 섭니다. 군을 하나로 보면 한달 내내 장이 옮겨다니면서 열려 한달중 20일 가까이 하나의 군에서 장이 선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이 시장체계의 형성은 적어도 한 군의 범위에서 교환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5일장은 이후 20세기 말까지 꾸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생해 왔으나 지금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상설시장에 밀려 많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일장(장날)
선정취지 및 필요성
우리 민족의 정취와 지혜가 담긴 장소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특히 조선시대에 정착, 확대된 오일장 체제는 그 유래가 드문 것이라 하겠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로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날이 정확하게 언제 정해졌는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15세기 경에서 시장이 크게 증가하면서 17세기 후반부터 장날을 열흘로 하던 장날을 5일
또는 7일 장날로 통일을 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향시는 크게 매일 열리는 상설시와 아침저녁으로 열리는 조석시, 그리고 일정 기간을 두고 열리는 정기시로 나뉜다. 정기시에는 2일장·3일장·5일장·10일장·15일장·연시(年市) 등이 있었으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한 달에 5일 간격으로 여섯 번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출처:전통문화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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