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천 궁녀는 궁녀를 많이 거느렸다는 문학적 수사입니다.
삼천궁녀가 처음 언급된 것은 조선 초기이며 삼국사기에는 낙화암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도 단지 의자왕과 후궁들이 바위에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잘못되었다고 일연이 언급한 데에서 등장합니다.
후대의 사관들이 나라가 망하니 많은 왕실의 여인들이 아마도 여기서 죽었겠지 라고 표현한 것일뿐이며 이러한 문학적 수사를 진짜 수치로 오해한 결과 의자왕은 오늘날까지 색욕의 화신으로 낙인 찍여있어, 언어의 관습이 변하면서 만들어진 역사왜곡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