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에서 내시라는 것의 역할은 무엇이고 언제부터있었나요?
동 아시아 쪽에만 있는 것 같은 내시라는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궁 내에서 별 할 일도 없어 보이고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은데 은근 사극에서 보면 별 협잘질까지 하던데.
그런 내시가 왜 왕 옆에서 항상 따라다녔었는지 그 역할도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시 >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직위으로 내시의 시는 일본의 사무라이와도 의미가 통합니다.
원래는 임금의 근처에서 경호나 잡일을 해주는 역할 이었습니다.
내시는 고려시대 부터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내시는 현대의 비서실 이며,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환관들이 내시부를 맡게 되면서 내시가 곧 환관 이라는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명의 전달, 음식물 감독, 청소, 궐문 수직 등 궐내의 잡무를 맡아보던 내시부의 벼슬아치를 이르던 용어입니다. 본래 고려시대에는 숙위 혹은 근시(近侍) 관원이었으나, 고려 말 환관들이 내시직에 많이 진출함으로써 환관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내시부(內侍府)는 상선(尙膳: 종2품), 상온(尙醞: 정3품 당상관), 상다(尙茶: 정3품 당하관), 상약(尙藥: 종3품), 상전(尙傳: 정4품), 상책(尙冊: 종4품), 상호(尙弧: 정5품), 상탕(尙帑: 종5품), 상세(尙洗: 정6품), 상촉(尙燭: 종6품), 상훼(尙烜: 정7품), 상설(尙設: 종7품), 상제(尙除: 정8품), 상문(尙門: 종8품), 상경(尙更: 정9품), 상원(尙苑: 종9품) 등 14개 직책에 모두 140명의 내시를 정원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내시들도 일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궁궐 밖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근무 형태는 크게 장번과 출입번으로 나뉘어 교대로 근무하였습니다. 내시는 왕의 측근으로서 궐내에 상주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거세한 자만이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래 선천적인 거세자를 대상으로 충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시가 되면 경제적 혜택이 상당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거세하고 내시에 지원하여 임명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편, 내시들도 양자를 택하여 가계를 이어갔고 족보를 작성하였습니다. 내시 족보로는 1805년(순조 5)에 이윤묵(李允黙)이 편찬한 『양세계보(養世系譜)』 등이 전해집니다. 이 족보에는 내시 777명의 자호주4, 본관, 생몰년, 묘소 위치, 배우자의 본관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내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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