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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4

개성 만월대 궁궐터는 어떤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개성 만월대 궁궐터는 어느시대에 만들어 졌으며

이 건축물의 제작된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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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5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에 있는 고려시대 태조가 창건하여 거처하던 궁궐터로 919년 정월에 태조가 송악산 남쪽에 도릅을 정하고 궁월을 창건한 이래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될 때까지 고려왕의 주된 거처였습니다.

    태조가 궁예를 몰아내고 태봉국 철원성에 즉위 후 다시 송악으로 돌아와 옛 저택자리에 궁궐을 지은것이 만월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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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월대(滿月臺)는 고려의 궁궐터를 부르는 명칭이다. 현재는 편의상 그 궁궐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태조 대부터 국왕이 공식적으로 머무르는 본궐(本闕)로 사용되었던 이 궁궐은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紅巾賊)이 개경(開京)을 점령했을 때 불타버렸다. 그 뒤로는 복구되지 못하고 터로 남아있으며, 2018년 현재 남북 공동 사업으로 발굴이 추진되고 있다.

    -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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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월대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었던 옛 궁궐터를 말해요. 고려 말 홍건적이 침략해 와 개경을 점령하였는데, 그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최근까지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고려 궁궐터의 중심인 만월대에 2007년 남북 역사학자들이 모였어요. 이후 남북의 공동 발굴로 수백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고려 왕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발굴은 조사구역을 구분하기 위한 측량으로 시작되었어요. 발굴단은 바둑판 모양으로 줄을 설치해 조심스럽게 발굴을 했어요. 흙을 1m 정도 걷어내자 궁궐 지붕에 있었던 기와 조각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어요. 많은 기와 조각 중에 발굴단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어요. 불교가 탄생한 고대 인도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였죠

    2015년 남북 공동발굴이 끝나갈 무렵 작은 유물 하나에 발굴단은 환호성을 외쳤어요. 흙을 모아 체질을 하다 손톱 크기의 아주 작은 금속활자 한 개가 나왔거든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에요.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통해 이 사실을 증명했지만 활자 대부분은 없어지고 단 2점만이 남아 있어요. 그나마 출토된 곳이 명확하지 않아 그 가치가 떨어졌죠. 발굴지가 확실한 금속활자가 발견되면서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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