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보수적이고 강직한 스타일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면이 있었던 세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했다고합니다. 대국을 보는 시각이 뛰어났고 당대에 알아주는 군자로 범죄 사건에도 너그러움을 위주로 처리했다고하네요. 강직하고 분명하며 정확한 스타일의 인물로 주로 추진력과 결단력이 필요한 업무에 능했으며 강한 결단력, 추진력과 6조 판서직을 모두 수행하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결합되어 정책 회의 때마다 주목할 만한 의견을 자주 냈고 복잡한 토론을 거쳐도 결국 황희의 안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합니다. 원만한 성품의 동료 정승 맹사성은 황희의 이런 강직함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주로 융통성과 센스가 필요한 일처리에 능한 편이었기에 중요 요직에 꾸준히 임명 되었다고 볼 수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세종의 가장 신임받은 재상으로 알려지는데요. 가장 그가 뛰어났던 점은 원만한 인품과 부정한 돈은 절대 욕심 내지 않는 청렴 결백의 성품인것 같습니다. 이로인해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시문에도 뛰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