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활의 역사는 고조선의 단궁(檀弓)에서 비롯되는데, 단궁은 목궁(木弓)으로서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나는 신식무기 각궁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궁에 관한 기록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들 수 있는데, “예(濊)는 창[矛]을 만드니 길이가 3장(丈)이나 되어 몇 사람이 이를 들어야 한다고 하며, 또 보전(步戰)에도 능하고 낙랑단궁(樂浪檀弓)이 이 나라에서 나온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이 단궁은 부여·동옥저 등 여러 나라에서 모두 사용된 활이며 삼한(三韓)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낙랑단궁이란 조선단궁을 말하는 것으로서, 중국과 다른 우리 고유의 활, 즉 각궁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유득공(柳得恭)의 『사군지(四郡志)』에 보면 “속(俗)에 단(檀)을 일컬어 박달(朴達)이라 하는데 박달나무로 활을 만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궁의 궁재(弓材)가 과연 박달나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진서(晉書)』 숙신전(肅愼傳)에 “석노(石弩)와 피골(皮骨)로 만든 갑옷이 있는데, 단궁은 3척 5촌이요 그 화살인 호시(楛矢)는 길이가 1척 8촌이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 단궁이 단궁(短弓)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