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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0

우리나라 피아노는 언제 생긴 악기인가요?

피아노는 우리나라악기가 아닌 서양 악기로 알고 있는데 그럼 우니나라에 피아노는 언제부터 생긴 악기인가요?

피아노가 언제부터 보급되고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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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피아노는 크리스포토리가 1698~1700년경 발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종 시대에 피아노가 보급되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1907년 일본으로 끌려간 영친왕이 1917년 말 일본 육사 졸업 후 잠시 귀국해 국내에 머물 때 고종 황제가 영친왕을 위해 덕수궁 함녕 전에 보관중이던 두 대의 피아노를 석조전으 로 옮겨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로 1907년 이전 왕실에 두대의 피아 노가 있었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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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6.20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07년 4월 황성신문에 새문밖 법인여관에서 피아니스트 신나피아헌트 양이 한국인과 함께 음악회를 가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피아노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으로 1907년 경 피아노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지금의 영창악기 회장인 김재섭이 외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피아노를 조립, 생산하면서 부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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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 황제가 하사한 피아노가 국내에 들어왔 다?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하 겠지만 얘기는 97년 7월8일 임시국회로 거슬 러 올라간다. 당시 문화체육공보위원회에서 국민회의 최재승의원은 "구한말 고종 황제가 평양 한 성당에 하사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입 피아노를 현재 인천 세관에 보관중이라 는 정보가 있다"며 송태호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 물론 송장 관은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당시 최의원의 질문은, 바야흐르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 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또 무엇보다 해방후 창덕궁 등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가 수차례 나면서 구 왕실 재산 목록이 모두 소실돼 피아노의 실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 다는 점에서 단순한 흥밋거리 수준을 벗어나 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중견작가 송우혜씨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가 '고종 황제 피아노'에 대한 기자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송씨는 요즘 구 한말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을 소재로 한 소 설 '마지막 황태자' 집필에 열중하고 있는 데, 그가 최근 이 소설 집필을 위해 당시 총 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읽는 과정에서 흥미 있는 기사를 발견했다고 알려온 것.

    다음은 '매일신보' 1918년 1월26일자 3면에 '만족하신 양악대의 봉영곡'이란 제목으로 실린 기사 내용의 일부.

    "(왕세자 전하께서는) 음악에 취미가 특별히 깊으시와 이번 경성에 건너오신 뒤에도 태왕 전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왕세자 전하의 어리셨을 때에 가지고 노시던 피아노 두 채 를 함녕전으로부터 석조전에 옮기게 하시고 그동안 병이 난(고장 난) 것을 악기 점원이 밤을 새워가면서 급히 고쳐서…."

    “망명 김덕홍씨 운영했던 여광무역 통해 수입”

    1907년 일본으로 끌려간 영친왕이 1917년 말 일본 육사 졸업 후 잠시 귀국해 국내에 머물 때 고종 황제가 영친왕을 위해 덕수궁 함녕 전에 보관중이던 두 대의 피아노를 석조전으 로 옮겨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로 1907년 이전 왕실에 두대의 피아 노가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최의원의 질문도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 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최의원은 최근 기자를 만나 "당시 확실한 소스로부터 받은 제보였음에도 송장관이 딱 잡아뗐다"고 밝혔다.

    최의원은 또 "북한은 당시 극심한 식량난 때 문에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를 팔기 위해 중 국으로 반출했는데, 고종의 피아노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했던 김덕 홍씨가 운영하던 여광무역을 통해 우리나라 에 들여왔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 고종 황제 피아노 반입에 관련 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증언은 엇갈린 다. 현재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고 있는 김덕홍씨는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한 상태.

    그러나 김씨는 국내 대리인 역할을 하는 그 의 한 측근을 통해 "북한이 중국에 반출한 것을 국내에 들여왔다"고 확인했다. 이 측근 은 또 "김씨가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고 후에 자세히 밝힐 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 였다"고 전했다.

    반면 당시 피아노 반입에 관여한 것으로 알 려진 남영식 전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은 어렵 게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고종 황제 피아노 건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그와 관련된 기록은 국정 원에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결국 국정원은 고종 황제의 피아노 행방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국 정원이 그 전모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고종 황제 피아노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재산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재 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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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들어온 정확한 기록은 없어 의견이 분분한데

    그 중 최초의 피아니스트인 김영환(1893~1978)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양악백년'에서

    1894년 우리나라 광무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마르텔(Emile Martel)이 1905년 초에 결혼을 하면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아말리(Amalie)가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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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들어온 것은 1900년 전후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피아노가

    탄생한 지 약 200년이 지난 뒤에 국내에 반입 된 것입니다.

    서양악기다 보니 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외국인이 도입해 목회활동 등에 주로 사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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