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부인과 유여의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중국 고대 한나라 유방이 왕이던 시절 척부인과 유여의가 있었는데요. 이 두 사람은 비극적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어떤 일생을 살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척부인과 유여는 백제 멸망 전후의 격동기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모두 백제의 부흥 운동과 관련된 인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선 척부인은 백제의 귀족 여성으로, 흑치상지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일생은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 운동에 가담하여 항전하다가 결국 당나라에 항복하고 그곳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때 척부인은 남편을 따라 당나라로 가지 않고, 자결하거나 절개를 지켰다는 전승이 전해집니다.
그녀는 남편이 적국에 투항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끝내 따라가지 않았으며, 백제인의 충절과 국망의 비애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게 됩니다.
유여는 백제의 장군 혹은 왕족 계통으로 전해지는 인물로, 백제 멸망 이후에도 부흥 운동에 가담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부흥 운동이 점차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다른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유여는 끝까지 항전을 지속하려 했으나 결국 힘이 부족했고, 흑치상지와 마찬가지로 당나라에 투항하거나 끌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여 역시 당나라의 세력 아래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척부인은 한나라 유방의 총애를 받던 후궁이자 아들 유여의 생모입니다. 유방이 황제가 된 뒤에도 척부인은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방은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황태자로 세우려 하였으나 신하들과 정실부인 여태후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유방 사후 여태후가 실권을 잡자 척부인과 유여의는 참혹한 최후를 맞습니다. 여태후는 척부인을 궁형에 가두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발을 자른 뒤 눈을 뽑고 귀에 유향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들고 말을 못하게 한 뒤 돼지우리에 가두는 등 극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유여의는 척부인의 아들로, 유방이 총애해 조(趙)왕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유방 사후, 여태후는 자신의 아들 혜제(유영) 외에 다른 후계자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여의를 불러들여 독살했습니다. 당시 유여의는 겨우 12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