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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무
수리무23.03.29

정조가 폐세손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죄를 짓고 뒤주에 갇혀서 죽었는데 그 아들인 정조는 왜 폐세손을 안했나요?

당시 조선은 연대법이 있어서 아버지가 죄인이면 아들도 죄인이 되는 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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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장효진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 마땅한 직계자손(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조에겐 아들이 2명 있었는데, 장남 효장세자는 일찍이 병으로 사망하였고.

    사도세자마져 임오화변으로 사망하며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친손자마져 날려버리면 왕위를 이을 직계자손이 마땅치 않고, 설령 어찌저찌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왕권이 위태로울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2. 딱히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세자가 많은 사고를 낸것과 달리 정조는 딱히 눈에 띌만한 사고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에 들어했기에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음으로써 일종의 꼼수(?)를 썼기 때문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면 정조 역시 연좌제의 영향을 받겠지만.

    정조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삼음으로써 연결고리를 끊었고.

    덕분에 정조는 사도세자의 죄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습니다.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답변은 본인이 경험 또는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작성한 정보글로, 일부 착오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정조가 영조의 유일한 적통이였기 때문이였을 것입니다.

    또한 영조는 사도세자 사후 그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정조를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연대법이 존재하여 아버지가 범한 죄로 인해 아들도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실제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도세자가 범한 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정확한 사건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그가 정조가 즉위하기 전의 사안이라는 점과, 정조가 즉위 후에는 사도세자가 이미 사형당하고 있어 폐세손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폐세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정치적인 개혁과 형평성을 추진하며,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등 많은 일을 해내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왕위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정조는 사도세자의 죄에 대한 처벌이나 폐세손 문제보다는 국가를 이끄는 역할에 더욱 집중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모든 것은 영조가 결정했습니다. 최초에는 혜경궁과 같이 친정으로 쫒겨 가서 사가에서 잠시

    살았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죽고 그의 장례식에도 정조(이산)를 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정조는 속으로 아버지의 장례까지

    못치르게 하는구나 하는 원망이 있었을수도 있습니다.(이건 개인적인 견해)

    하지만 사도세자의 장례식 후 영조는 정조를 궁으로 불러 들이고 얼마 후 자신의 죽은 첫째 아들의 양자로 들이면서 세손으로 책봉해

    버립니다. 영조는 정조의 영석함을 보았고 자신의 사후 후계를 염두 해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시도때도 없이 정조를 시험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영조는 당시 정조 이외의 대안이 없었고 후계자로서의 정조를 신뢰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많은 신하들은 반대 했지만 밀어 붙이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신병이라는 핑계를 대기는 했어도 죄인인

    사도세자의 아들로서는 왕위를 이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영조에 의해 죽은 백부인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는 방식으로

    왕위 계승권을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정조는 즉위 이후 정통성 확보를 위해 효장세자를 진종(眞宗)으로 추존했다.

    친부는 끝내 추종하지 못했는데 양부는

    거의 즉위하자마자 자기 정통성을 위해서

    추존할 수 밖에 없었다. 사도세자는 고종 대에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출처: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권태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 연대를 적용하기에는 세손의 나이가 매우 어렸고, 그럴 시 왕의 계보가 끊기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가 폐세손이 되지 않은 이유는 정조 시대에는 체질이 강한 왕족들이 다수 있었고, 정조 역시 건강한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정조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하였고, 음식에도 신경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