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은 언제 불에타서 소실된 것인가요?
경복궁의 재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흥선대원군은 무리하게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역사적 사실을 알기전에 경복궁은 한번도 위기가 없이 그저 지금의 모습이 처음부터 쭈욱 이어져왔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진즉 불에 타서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화재로 소실된 때가 조선의 역사에있어 언제쯤인지, 그 원인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 때 창덕궁, 창경궁 등 다른 궁도 모두 불에 타버려 임진왜란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왕은 정릉동의 구 월산대군가에 임시 어소를 정하였다고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종 때 중건된 지 38년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파천을 떠나자 도성이 아노미가 되며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은 일본군이 입성하기도 전에 백성들의 손에 이미 모조리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말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
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여기에다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떄 소실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분노때문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보신것 같이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갔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화가 나서 임금이 지내던 경복궁을 불태웠습니다. 또 다른이유는 신분입니다. 백성들은 노비문서와 같은 것들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노비문서가 경복궁에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불태운것 입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법궁입니다.
1395년 창건되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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