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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마수리346
요리조리마수리34623.09.02

경복궁은 언제 불에타서 소실된 것인가요?

경복궁의 재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흥선대원군은 무리하게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역사적 사실을 알기전에 경복궁은 한번도 위기가 없이 그저 지금의 모습이 처음부터 쭈욱 이어져왔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진즉 불에 타서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화재로 소실된 때가 조선의 역사에있어 언제쯤인지, 그 원인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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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 때 창덕궁, 창경궁 등 다른 궁도 모두 불에 타버려 임진왜란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왕은 정릉동의 구 월산대군가에 임시 어소를 정하였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종 때 중건된 지 38년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파천을 떠나자 도성이 아노미가 되며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은 일본군이 입성하기도 전에 백성들의 손에 이미 모조리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말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


    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여기에다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떄 소실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분노때문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보신것 같이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갔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화가 나서 임금이 지내던 경복궁을 불태웠습니다. 또 다른이유는 신분입니다. 백성들은 노비문서와 같은 것들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노비문서가 경복궁에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불태운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법궁입니다.

    1395년 창건되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중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