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4

일본의 마루타 실험에 대해서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이 자행했다던 극도로 반인륜적인 실험이 있다고 하는데요

마루타실험이라는데 이게 통나무? 그런 뜻이라고 하더라구요.

왜 이런 실험을 했을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731부대는

    1936년에 설립되어 일본 제국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활동했다. 이 부대는 당시 일본제국의 천황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된 유일한 부대입니다. '방역급수부'란 전염병을 예방하고 물을 공급한다는 뜻입니다. 즉, 부대 명칭대로라면 예방의학의 연구 및 식수의 병참을 연구하는 부대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시이 시로가 부대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명칭은 위장명칭으로 전락했고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통해서 생물학무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본디 만주지역은 공기와 물이 매우 나빠서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지역이었으며 실제 일본군은 전염병 사상자가 전투사상자 이상으로 많이 발생했기에 급수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쇼와 덴노는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에 급수부대를 창설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에 따라 방역급수부대로 창설된 부대인 것입니다. 이시이 시로가 취임한 이후 부대구조는 인체실험부대로 전락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방역급수부대라고 했습니다. 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이 부대의 정리정돈, 청산 이전까지 대외적으로 이런 부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질 않았는데, 그야 당연히 부대 자체가 군사기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체실험의 대상을 '마루타'라고 불렀습니다. 희생자 중에서는 전쟁 포로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연합군 포로(미국군, 중국군, 소련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끌려가 희생되었습니다.
    미국 또한 전후 전범들과의 사법거래를 통해 생체실험을 통해 나온 자료를 고스란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시이 시로같이 731 부대에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른 자들보다 사회적으로 출세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미군과의 사법 거래에 의한 것입니다. 미국이 자료에 눈이 멀어 전범에게 면죄부를 준 탓에 죽어나간 사람들만 피눈물을 흘리게 됐고, 이는 미국이 난징 대학살, 만주사변, 위안부 문제와 달리 731 부대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미국은 731부대가 아닌 일본 내에서 소수의 미국인이 생체실험을 당하여 살해되었을 때 그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였지만 731부대를 비롯한 자국민 이외의 사람이 생체실험을 당한 경우에는 전혀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금전까지 지급하며 보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생체 실험 주범들에게 월급을 주고 실험 인원으로 고용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화학전 요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까지 요청하였습니다.

    미국이 이같은 행동을 한 이유는 종전 이후 소련과 전쟁을 하게 될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대표되는 인재와 기술력이 절대 소련에게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계산이 있었고 독일의 일반 과학자는 물론 베르너 폰 브라운 같은 나치 소속 과학자도 신분세탁으로 빼오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특히 윤리적 문제로 구하기 힘들고 사법처리 도중 소련에 넘어가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는 인체실험 자료라는 점이 미국 입장에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기에 거래에 응했고, 실제로 베르너 폰 브라운은 우주 경쟁의 주역이 되는 등 유용했기 때문에 미국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731부대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23.03.24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했습니다.

    사람을 실험쥐처럼 실험을 한것입니다.

    얼마나 나쁜일인가요?

    오로지 의학적 해부학적으로 실험했다 하나 해서는 안될아주 더러운 족속들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일본이 1935~1036년 세균전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시이 시로의 건의로

    일왕의 명에 따라 창설된 제731 부대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로 벌인 생체실험을 한 것을

    ‘껍질 벗긴 통나무’란 뜻의 ‘마루타 실험’이라 합니다.

    이때 희생된 사람은 최소한 3,000명이라고 하며,

    이들은 중국, 러시아, 한국, 몽골인들입니다.

    실험내용은, 원심분리기에 산 사람을 넣어 피를 짜는 실험,

    말폐된 방에 공기를 빼면서 인체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지켜보는 실험,

    사람에게 페스트균등 각종 세균을 주사해 시간대별로 변화를 기록한 실험

    동상 걸린 인간의 팔다리가 어떻게 썩어들어가는 가를 관찰하는 실험 등이 자행되었습니다.

    전후 일본의 마루타 실험 의사들은 모두 면죄됩니다.

    생체실험을 통해 얻는 의학정보들을 미국이 자료를 넘겨 받는 조건으로 방면해 주었으며,

    1948년 일본의 국가 우생학법을 입법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루타는 일본에서 통나무를 의미합니다.

    일본군 731부대원들은 중국의 생체 실험장을 제재소로 은폐하였는데 이 곳 실험장에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들을 일종의 제재소 공장 재료로 비유하면서 마루타 라는 은어를 붙였습니다.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는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급수부대를 창설할 것을 명령하고 1936년 방역급수부대가 만들어지나,

    전염병을 예방하고 물을 공급하는 부대였지만 부대장으로 이시이 시로가 부임하며 이 부대 명칭은 위장 명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 방역급수부대에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인체실험을 자행하기 시작했고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게되며 1941년 731부대로 명칭을 변경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이 자행한 극도로 반인륜적인 실험 중 하나가 마루타실험(Maruta Experiment)입니다. 마루타는 일본어로 "통나무"를 의미합니다.

    마루타실험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의 특별한 의학부대인 "731부대"가 수행한 인체실험으로, 주로 중국인과 소련인 포로, 화자 및 군인 등에게 실시되었습니다. 실험은 기본적으로 생체실험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체온, 혈압, 심박수, 호흡 등을 측정하고, 각종 병원균, 박테리아, 독균 등을 접종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를 내어 상처 치료나 감염증에 대한 치료 등을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대상자가 사망하였으며, 일부 생존자들에게는 후유증과 장기적인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남았습니다.

    마루타실험은 당시 일본군이 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간 실험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인류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는 엄청난 범죄행위입니다. 이 실험은 일본군의 인신매매, 성노예화, 대량학살 등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행위 중 하나로 꼽히며, 일본군의 전쟁 범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이 자행했다는 극도로 반인륜적인 실험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이 진행한 인체 실험입니다. 그중에서도 "마루타실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실험 중 하나입니다.

    마루타실험은 일본군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북부에서 실시한 실험으로, 인간 실험을 위해 포로나 살해된 사람들의 시체를 사용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독감, 천연두, 무진장 등의 질병을 인공적으로 유발하고, 그 치료법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