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은 왜그렇게 유명한가요?나라를 세운 것도 아닌데~
한니발장군은 왜 그렇게 유명한가요?나라를 세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승승장구한것만도 아니던데요
한니발의 업적과 말년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 2차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으로 제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마르카 혼자 철천지 원수 로마의 멸망을 목표로 기획하고 수행한 것으로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조국 카르타고의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과감한 전략으로 이탈리아 본토로 들어가 전설적인 활약으로 로마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넣었으나 끝내 로마는 멸망시키지 못했고 결국 로마의 장군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자마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카르타고는 패전했음에도 그는 지금까지 명장으로 칭송받는데 전쟁 결과와 별개로 그의 뛰어난 지휘력과 전설적인 전과는 부정할수 없기 때문이며 한니발에게 호되게 당하면서 보병과 기병의 유기적 운용을 뼈저리게 습득해 군대에 보급한 로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중해의 강대국을 모조리 쓰러트리는 군사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한니발은 본인의 의도와 달리 로마의 성장에 누구보다 많이 기여한 인물로 오늘날 그의 조국인 카르타고, 그가 싸운 포에니 전쟁, 그를 꺾은 스키피오는 거의 몰라도 한니발과 알스프 원정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렐우코스가 패망하자 한니발은 타국을 전전하며 도망, 우선 아르메니아로 도망갔는데 아르메니아 왕이 로마와 강화하자 다시 비티니아로 망명, 비티니아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이 되었고 비티니아 해군을 지휘하여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를 상대로 큰 승리를했으나 로마의 세력이 비티니아에 까지 미쳤고 제 2차 마테도니아 전쟁에서 활약한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그사 비티니아에 망명한 한니말을 잡기 위해 비티니아로 파견되었습니다.
결국 비티니아 왕 프루시아스 1세는 한니발을 넘겨주는데 동의했지만 그 전에 사망했습니다.
한니발이 죽은 정확한 연도와 죽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고 대체로 기원전 183~181년 사이라 추정, 가장 유명한 설은 자살설로 한니발이 자신이 로마에 넘겨진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마르마라 해의 해안가에서 독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르타고의 영웅. 하밀카르 바르카스(Hamicar Barcas)의 아들. 제2회 포에니(Poeni) 전쟁 때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침입, 칸네 싸움에서 로마 군에 대승하여 남 이탈리아를 지배하였다. 전쟁이 오래갈수록 소모가 많고, 기대하던 마케도니아ㆍ카르타고 본국의 원조가 없어 고립, 그에 굴복한 여러 도시가 이탈하고, 로마의 스키피오(Scipio) 장군이 본국을 공격하자 귀국하여 자마의 전투에서 패배(B.C. 202), 굴욕적 강화를 맺었다. 전후 내정을 개혁하여 국력 회복에 노력하였다. 정적에게 배반당하여 시리아로 망명하였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로마의 추구에 못이겨 음독사(飮毒死)했다. 제2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한다. 그에게 짓밟힌 로마는 오래도록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생했다.
출처 : 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