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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5

일기예보, 우리나라 기상청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날씨를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에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주시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기상청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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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경사회에서 기상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기상관측을 해왔습니다.

    고려시대의 천문대는 지금도 남아있고요. 신라에 첨성대가 있었다는 말은 고구려나 백제에도 그와 비슷했다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천문대와 기상청이 따로 있지만, 고대의 천문대는 일기예보까지 같이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상청의 역사는 1904년 최초로 설치된 임시기상관측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 후에는 1949년에 문교부 소속으로 국립중안관상대가 설치되었고, 이후 교통부와 과학기술처로 그 소속이 변경 되었으며 1981년에는 그 명칭을 중앙기상대로 변경하였지요. 1987년에는 중앙기상대를 중앙행정기관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중앙기상대에서 기상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상예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위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첨단 장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첨단장비가 무조건 좋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옛날이 지금부터 정확했다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기상이라는건 예측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비구름이 갑자기 사라진다든지,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든지하는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100%예상은 불가능할 겁니다.


  • 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4.25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상청은 지구상의 대기를 관측하고 그를 통해서 날씨는 예보, 기상과 기후 정보를 생산하고 연구하는 중앙행정기관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에는는 일관(日官)·일자(日者) 등의 관직이 있었고, 고려 초에는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에서 역수(曆數)·측후·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으며, 1308년에 서운관(書雲觀)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에서는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후에 광복후 미군과 한국 대학교수들이 기상관련 책임자가 되면서 1949년 8월 중앙관상대로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당시에 지금과 같은 일기예보를 하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중국 북한쪽 기상자료를 얻을수 없어 일기분석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위성수신장치 등 기술적으로 발전하여 발전된 기상청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상청은 1948년 설치된 국립중앙관상대가 효시로 1963년 중앙관상대로 개편되었습니다. 당시 명칭인 관상대는 조선시대의 천문대 및 기상청 역할을 했던 관상감에서 유래했고 1895년 관상소로 명칭이 변경되나 1907년 통감부에 의해 측후소로 격하되었던 것을 광복 후 옛 이름을 살려 관상대를 설치했습니다.

    당초 중앙관상대는 기상과 천문업무를 모두 관할했으나 1974년 국립천문대로 분리되어 나가면서 기상업무만 남아 주업무와 기관명칭을 일치시키기 위해 1982년 1월 1일 부터 중앙관상대를 중앙기상대, 지대를 지방기상대로 개편합니다.

    이어 1990년 중앙기상대가 기상청으로 승력되었고 1992년 지방기상대를 지방기상청으로 측후소를 기상대로 개편했고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에 있던 기상청이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남은 부지로 1998년 12월 15일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전했고 기존의 송월동 지부는 서울기상관측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 과학기술부에서 환경부 소속으로 이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상 역사는 생각 보다 유래가 깊습니다우리나라 기상청의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에 일관(日官)·일자(日者) 등의 관직이 있었고, 고려 초에는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에서 역수(曆數)·측후·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으며, 1308년에 서운관(書雲觀)으로 통합되었다. 서운관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세조(1466년)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다. 관상감은 조선시대 말까지 행정관청인 동시에 연구기관이었고, 또한 관측소와 교육기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고종 때는 관상감이 관상국을 거쳐 관상소로 변경되었다고 하지요. 1907년에 통감부관측소와 부산, 목포, 원산, 용암포, 성진 등에 지소가 설치되면서, 관상소는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45년 말부터 일기도를 작성하여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일기예보가 가능했으나, 북한과 중국의 기상자료를 얻을 수 없어 일기분석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1946년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창군 하기 시작한 육·해·공군의 기상요원으로 상당수의 중견간부와 기상기술자들이 퇴직 또는 전직하는 사태로 인하여 기상 요원의 확보와 훈련이 시급하였다고 하지요. 따라서 관상대 내에 6개월간의 단기 기상 교육과정으로서 기상기술원양성소(氣象技術員養成所)를 설립하고, 1948년 9월에 제1회 수료생(21명)을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1982년 1월에 중앙기상대로 개칭 되었고1985년 기상연구소 조직을 5개 연구실로 개편하였고, 1986년부터 OECF 차관에 의한 장비 현대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해 배경대기감시계획의 일환으로 소백산관측소가 신설되었고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사는 삼국시대 기우를 재는 것이 아닌 점설술에 의지함으로서 시작이 됩니다.

    근대사 현대사 역사는 1956년 3월 16일에는 미국 국무부 도움을 받아 세계기상기구에 정식 가입했다. 1962년에는 교통부 소속으로, 1967년에는 과학기술처로 이관되었다. 1981년에는 중앙기상대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0년에 지금과 같은 기상청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