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효령대군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써 장자가 아님에도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양녕대군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있는데 둘째였던 효령대군은 비교적 덜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령대군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름은 보, 초명 호, 자 선숙, 시호 정효 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며 부인은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독서를 즐기로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했으며 충녕과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합니다.
특히 불교에 독실하여 수많은 유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론하도록했으며 1435년 회암사 중수를 건의, 1464년 원각사를 창건하게 되자 조성도감 제조가 되어 역사를 친히 감독했고 원각경을 국역하여 간행했습니다.
문장에도 능했고 성격이 원만하여 친족들과 우애가 깊었으며 세종 , 문종, 단종, 세조, 예조, 성종까지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29년(세종 11) 관악사(冠岳寺)를 삼창(三創)하고,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 미륵존상(彌勒尊像) 및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월출산 무위사(無爲寺)의 중창을 지유(指諭)하고, 만덕산 백련사(白蓮寺) 중창의 시주(施主)주1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에 왕명을 받아 어용(御容)과 『선원록(璿源錄)』을 새로 조성한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였다. 그리고 그 해 윤12월에 문소전(文昭殿)의 친제(親祭)주2에 종헌관(終獻官)으로 참례하였다. 또한 1432년 한강에서 7일간 수륙재(水陸齋)를 개최하였다.
1434년 1월에는 친형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함께 계달문서(啓達文書)에 이름을 쓰지 않도록 조처하였다. 그 해 4월 회암사(檜巖寺)의 중수를 건의하고, 1435년 회암사에서 불사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5월에는 흥천사탑전(興天寺塔殿)의 수리를 관장하였다.
1438년경에 『부모은중장수태골경합부(父母恩重長壽胎骨經合部)』를 사경(寫經)해 천안 광덕사(廣德寺)에 시주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용문산 상원사(上元寺)에 종을 주조해 봉안하였다. 그리고 1454년에는 1447년에 조성한 태안사(泰安寺) 대발(大鉢)을 개조하였다.
1458년(세조 4)에는 태조가 1398년(태조 7)에 지은 함흥 선향헌목(璿鄕憲目)의 서문을 지었다. 그리고 1469년에 함흥에 가서 향헌법 56조를 만들어 시행토록 하였다. 그런 한편 1460년 4월에는 왕세자빈의 책봉사가 되었다. 1464년 5월 회암사에서 원각법회(圓覺法會)를 개최했으며, 그 해 5월부터 이듬 해 4월까지 원각사 조성도감도제조로 활동하였다.
1463년 『법화경』, 1464년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과 『금강경』, 1465년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을 언해하고, 『원각경』을 수교(讐校)주3하였다. 1482년(성종 13)에는 강진 만덕사(萬德寺)에 영세불절(永世不絶)의 수류개를 위한 전답 10결(結)을 시주하였다.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인 예성부부인(蘂城府夫人)과의 사이에 6남 1녀, 측실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고,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예종 · 성종의 연고존친(年高尊親)으로서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주5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이 많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공헌한 바 크다. 묘는 서울 서초구 효령로 135에 있다.
1736년(영조 12) 묘하(墓下)에 청권사(淸權祠)가 건립되고, 1789년(정조 13) 사액(賜額)되었다. 그리고 1865년(고종 2) 양녕대군과 함께 세종묘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효령대군은 아버지 태종(太宗)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세종대옹이 '나의 형(효령대군)이 곧 청권'이라고 칭송하였고, 정도(正祖) 대에 이르러 효령대군의 사당을 창권사로 사액(賜額)하였다고 합니다.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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