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승려 겸익은 어떠한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관련 자료를 찾다가 겸익이라는 백제승려를 알게 되었는데요.
겸익은 어떠한 인물인지, 어떠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자세하게 답변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겸익은 백제 율종의 시조이며 529년(성왕 4)에 인도에 다녀와서 율종을 개창하였습니다. 그는 인도 중부의 상가나 대율사에서 범어를 배우고, 특히 율부를 전공하여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과 함께 귀국하여 흥륜사에 머물면서 인도에서 가지고 온 율문을 백제의 고승 28인과 함께 율부 72권으로 번역했습니다. 겸익의 율학 때문에 백제 불교는 계율 중심이 되었고, 그 후 일본 율종의 근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겸익은 백제 성왕 때 인도를 다녀온 유학승으로 백제는 6세기 중반인 성왕 대에 이르러 수도를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라 칭하며 중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백제는 불교식 왕명과 연호를 쓸 정도로 불교를 깊이 신행하면서 중국 남조와 적극적으로 교류, 당시 성왕은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하지만 신라와의 연합이 깨지면서 관산성 전투에서 위기를 맞아 성왕은 전사합니다.
성왕 재위 초 인도로 건너간 겸익은 상가나사에 들어가 범문을 배우고 율부를 전공, 그는 인도승 배달다 삼장과 함께 범본 율문을 가지고 백제로 돌아와 율부 72권을 번역했는데 이것이 백제 율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담욱과 혜인 두 법사가 율부의 소 36권을 지었습니다.
겸익에 대한 기록은 미륵불광사사적에만 수록되어있는데 이 사적기에 의하면 526년에 사문 겸익은 마음에 맹세하고 계율을 구하고자 바다를 건너 중인도의 상가나대율사에 이르렀다고 하며 그는 5년 동안 인도에 머물며 범문을 배우고 천축의 말에 환희 통하였으며 율부를 깊이 전공하여 계체를 장엄합니다. 그리하여 한역된 오부 광율은 살바다부의 십송율 61권, 담무덕부의 사분율 60권, 마하승기부의 마하승기율 40권, 미사새부의 미사새부오분율 30권, 근본유부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50권 등입니다.
겸익이 귀국하자 백제 성왕은 일산과 풍악으로써 교외에 맞이하여 흥륜사에 머물게 하였고 국내의 명승 28인을 모아 겸익을 도와 율부 72권을 번역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백제 율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에 담욱과 혜인 두 법사가 율부의 소 36권을 저술해 왕에게 바쳤고, 성왕은 비담과 신율의 소 36권을 지어 태요전에 받들어 간직했습니다.
왕은 장차 새겨서 널리 펴고자 하나 얼마 안 있어 붕어, 한편 겸익의 율학은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 승려 겸익은 백제 율종의 시조입니다. 백제 성왕 당시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한 유학승입니다. 성왕 초기 인도에서 상가나사에 들어가 불교를 배우고 율부를 전공하였으며, 인도승 배달다 삼장과 함께 범문 율문을 가지고 들어와 율종을 전파하였습니다.
겸익은 성왕의 환대를 받았으며, 흥륜사에서 율부 72권을 번역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에도 전해지지 않은 '오율부' 중 음광부가지 직접 가져와 번역해 산스크리트어 된 율부를 번역을 완성하였습니다.(526년경) 겸익의 이런 활동에 힘입어 백제는 중국(당나라 도선 624년 경)보다도 100여년 이전 시기에 율종이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백제의 불교가 확고히 다져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