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대에 시도한 서울진공작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6.25때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쟁을 우리나라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일제강점기 때도 서울진공작전을 시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시도한 서울진공작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13도 창의군의 작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질문에서 일제강점기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국내 진공 작전에 대해 궁금한 듯합니다.
국내 진공 작전은 1945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합니다. 4월 3일 OSS측 실무자인 싸전트(C. B. Sargent) 대위가 제2지대장 이범석, 제3지대장 김학규 등과 함께 임시정부 청사로 김구 주석과 광복군 총사령 지(이)청천을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구 주석은 “임시정부의 요원들이 동반한 연합군의 한반도에 대한 공격작전을 지원한다”고 함으로써 독수리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독수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광복군 대원들은 OSS 특수훈련을 받았습니다. 7월말 제 1기생 50명이 훈련을 끝내고, 8월 1일 2기생 50명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8월 5일 김구 주석은 OSS훈련이 끝난 1기생 대원들의 국내 진입작전을 미군측 OSS 총책임자 도노반과 논의했습니다. 훈련이 종료된 1기생들은 8월 20일 안에 특공대를 조직, 낙하산이나 잠수정 등을 통해 한반도에 침투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독수리 작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안타깝게 실행하지 못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8년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을 물리치려는 작전을 말하며 이인영 등 전국의 1만여 명의 의병들은 서울로 진격하여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경기도 양주에 집결하였고 선발대가 동대문 일대까지 진격하였으나 일본군의 반격이 심해 대패한 후 해산하였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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