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반민특위는 먼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친일파 가운데 도피를 꾀하는 자의 체포에 주력하였다고 합니다. 1949년 1월 8일에 미국으로 도피를 시도하던 박흥식(朴興植)을 체포하였으며, 반민특위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이종형(李鍾滎)을 체포하였고 이어 방의석(方義錫)·김태석(金泰錫)·이광수(李光洙)·최린(崔麟)·최남선(崔南善)·김연수(金秊洙) 등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친일파를 잇달아 체포하였다고 합니다. 반민특위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자 자수하는 친일파가 속출하고, 많은 사람들이 친일파의 행적을 증언하거나 제보하는 등 반민특위의 활동은 국민의 높은 관심과 지지 속에서 전개되었습니다. 반민특위는 정부 수립을 앞두고 해방에 기여한 애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무너진 민족정기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설치되었지만 반민특위는 설치 목적에 따라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러나 친일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비협조와 방해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