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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방과후사이다1442
학교방과후사이다144223.08.02

조선시대 빈민구휼은 어떻게 조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시대에나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이 존재하여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에도 사회적,국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빈민들을 어떤식으로 지원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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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빈민구휼 정책이 궁금한가봅니다.

    활인서 또는 동서활인원은 조선시대 빈민들의 구제와 치료를 맡던 관청입니다.

    의료활동 이외에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병막을 가설하여 환자를 간호하며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또한 사망자가 있을 때는 매장까지 담당했던 관청입니다. 1392년 설치되어 1709년에는 혜민서에 흡수되었다가 1743년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이 관청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료로는 빈민, 행려자의 구호와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한 전의감, 혜민서, 동서 대비원등이 있습니다.

    또 의창, 상평창, 사창, 교제창 등으로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하였지만 민심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 제도들이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빈민 구제 제도는 고구려의 진대법인데 조선 시대에는 그 제도의 이름을 환곡(還穀)이라 불렀습니다. 還(환)은 되돌린다는 의미 이기에 요즘 재정 정책으로 돈을 잘 굴리듯이, 조선 시대에는 곡식의 흐름을 원활히 하여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의 이름 인것 같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환곡 정책이 점차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에게 법으로 정한 것보다 많은 이자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원치 않는 사람에게 까지 환곡미를 떠넘겨 막대한 이자를 챙기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빌려주지도 않고 빌려준 것처럼 문서를 위조하여 농민을 겁박하고 곡식을 수탈하기까지 했습니다.결국 환곡 제도는 문란의 극치를 이루면서, 후기 조선 사회 혼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