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활동 이외에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병막을 가설하여 환자를 간호하며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또한 사망자가 있을 때는 매장까지 담당했던 관청입니다. 1392년 설치되어 1709년에는 혜민서에 흡수되었다가 1743년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이 관청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빈민 구제 제도는 고구려의 진대법인데 조선 시대에는 그 제도의 이름을 환곡(還穀)이라 불렀습니다. 還(환)은 되돌린다는 의미 이기에 요즘 재정 정책으로 돈을 잘 굴리듯이, 조선 시대에는 곡식의 흐름을 원활히 하여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의 이름 인것 같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환곡 정책이 점차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에게 법으로 정한 것보다 많은 이자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원치 않는 사람에게 까지 환곡미를 떠넘겨 막대한 이자를 챙기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빌려주지도 않고 빌려준 것처럼 문서를 위조하여 농민을 겁박하고 곡식을 수탈하기까지 했습니다.결국 환곡 제도는 문란의 극치를 이루면서, 후기 조선 사회 혼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