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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4.01.09

견훤은 왜 900년에 가서야 왕이라고 대외적으로 선포하나요?

견훤은 892년 무진주를 점령하고 왕이되었으나 대외적으로 왕이라 칭하지않고 신라왕의 신하라는 애매한 위치를 유지하다가 900년에 가서야 대외적으로 백제왕이라 선포하는데 그는 왜 건국 초기부터 왕을 칭하지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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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견훤은 원종과 애노의 난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신라 조정으로 부터 892년 군사적 독립을 이룬 뒤, 무진주를 점령하고 독자적 정체를 수립합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 다른 호족 처럼 행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이 호응하여 그 무리가 한 달(旬月) 만에 5천 명이 되어 자신감이 넘쳐 900년에 백제 의자왕의 숙원을 풀어주겠다며 백제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국호를 백제로 하고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후백제를 건국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명분 등이 부족하고 아직까지 견훤 자신의

    힘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꼇기에 그런 것으로 추측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92년 후백제의 군주로 재위한 견훤은 본래 남북국 시대 신라의 장군으로 신라 서남해안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배치되었으나 889년 시기를 전후에 거병하여 892년에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무진주를 점령하고 왕이라 칭했는데 단 이때는 공식적인 건국은 아니고 일단은 왕이면서도 신라의 신하라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다 900년 비로소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하여 3백여년 전에 멸망한 백제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900년이 되서야 내부 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무진주를 점령하고 내부를 안정화시켜야 하였으며

    내실을 다진뒤 900년에 어느정도 안정되어 이제 국가로써 기능을 할수 있다 판단하여

    왕이라 칭왕한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