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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고려 시대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혁을 방법을 놓고 급진과 온건파 신진사대부로 분열되고, 급진파가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선 건국에 참여한 급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여러 제도를 정비하였니다. 이들을 계승한 관학파는 성리학 이외의 과학, 농학 등 실용적 학문에 대해서도 제도 정비에 필요에 따라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온건파 신진사대부의 후손인 사림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대의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성리학만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의 기념 이념인 이기론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17세기 이들을 계승한 세력은 예학과 보학으로 확대합니다. 또한 양난 이후 성리학이 사회, 경제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집권 세력은 그들의 지배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리학을 절대시, 교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