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신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게 되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후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후고구려를 세웠으며, 스스로를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라 칭하고 관심법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궁예는 관심법을 이용하여 신하들을 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왕건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이반란을 일으켜 궁예는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궁예가 실제로 관심법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는 없으며, 이는 그의 통치력 부족과 권력남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