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형벌 중 하나인 유배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이잖아요. 유배생활을 하면 어떤 것이 제한되었나요? 집 안에서만 생활했어야 했나요? 어느 정도의 거리까진 나가봐도 됐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배를 떠나는 것 자체가 생활의 제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형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장형 100대를 맞고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 장형 100대를 맞고서 사망한 사례가 너무 많아 정치적 숙적을 숙청하기 위해 일부러 유형을 내리고 상대방을 장형으로 죽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중죄를 지은 유배인들의 도망가지 못하게 주로 흑산도, 완도, 제주도 등 외딴 섬으로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유배형은 죄의 중과에 따라 거리를 정하였습니다. 죄가 중하면 제주도 흑산도와 같은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유배형은 중앙정부 즉 조정에 멀리 보내는 격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왕족 등 일부를 제하고는 비교적 제한을 많이 두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