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들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최종적으로 멸망한 이후에 거기서 살았던 고구려의 수많은 유민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삼국 중 가장 강력했던 고구려였지만 말기에는 왕권이 심하게 흔들리고 수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긴 했으나 상당한 국력이 소모 되었고, 결국 당나라와 신라의 공격에 찬란했던 역사가 종말을 고했죠. 그 결과 고구려 유민들은 해당 지역에 그대로 살면서 당나라의 백성이 되거나, 통일된 신라로 넘어가기도 하였을 것이죠. 그러다가 대조영에 의해 고구려 유민들이 투합하여 발해가 건국되어 다시금 한반도의 역사에 들어오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고구려가 668년에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흩어지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 직후 다수의 고구려 유민들을 포로로 삼아 본토로 끌고 갔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거나 당의 군대와 행정 조직에 편입되어 활용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실권자였던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은 당에 투항한 뒤 관직을 받았지만, 끝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고구려 유민들 중 일부는 신라로 피난하거나 강제로 이주되었습니다. 신라는 이들을 받아들여 일정 지역에 정착시키고, 군사력이나 노동력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라 사회에서 하층민으로 분류되거나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며, 고구려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유민들은 지방 세력으로 성장하거나, 북방 방어 등 신라의 국방 체계에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의 삶 가운데 가장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재건의 움직임은 바로 발해의 건국이었습니다.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말갈족과 함께 동북방에 발해를 세우며 고구려의 정통을 잇고자 하였습니다.
발해는 정치·문화적으로 고구려의 제도를 상당 부분 계승하였고, 수도 상경 용천부의 구조 역시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에게 새로운 국가로서의 희망이 되었으며, 실제로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일부 유민들은 요동이나 북방의 유목 민족들 사이에 섞여 살거나, 소규모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며 생존을 이어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