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은 남진 정책과 왕권 강화를 위해 평양 천도를 단행하였습니다. 특히 천도는 단순히 수도를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 구도를 재편하는 과정이기도 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국내성과 그 주변의 토착 세력의 반발이 있었을 것이나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고구려 집권층이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백제의 개로왕이 북위 황제에 보낸 국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장수왕의 귀족 세력 숙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연(장수왕)은 죄를 지어 나라가 스스로 남에게 잡아 먹히게 되었고, 대신과 호족들의 살육 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수왕이 천도에 반발한 귀족 세력을 숙청하는 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평양의 신흥 세력은 장수왕에 적극 협력하면서 급부상하고 왕권을 뒷받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