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동안 ⓵광개토 대왕 이후 국토가 확장되고 국력이 신장된 점, ⓶평양은 고조선 이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된 지역이라는 점 ⓷대동강은 인적, 물적인 자원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평양이 통구 지방에 비해 자연적 조건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점 ⓸대동강을 이용해 황해를 통한 국제적 활동이 유리한 곳이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아울러 386년 건국한 선비족의 북위가 화북 지방을 지배하는 신흥 강국이 되자 북위와 충돌을 피하면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최근 한 나라의 외교 관계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는 논리에 입각하여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고구려가 남하 정책을 추진하여 백제를 공략한 것은 천도 후 48년이 지난 475년의 일이었고, 패주하던 백제의 추격을 중단한 것은 평양 천도가 남하 정책의 목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왕권 강화라는 국내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수왕은 국내성에 뿌리내린 구귀족들의 세력 기반인 국내성을 떠나 평양을 천도함으로써 이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왕권 강화에 반발하는 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단행되었다고 하였다.
어쨌든 고구려의 평양 천도는 정치, 경제적인 체제의 정비를 가져왔고, 한강 유역을 장악함으로써 한반도의 주도국으로 성장하였으며, 고구려가 동아시아 일대의 대제국으로 성장하여 천하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