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질문드립니다.
만일 피할수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것이 더 의미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시련을 견디는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는데요. 피할수있는 시련이란 어떤시련을 말할까요.정신적인것을 말할까요.나도남도 위하는일이 아닌걸 말하는걸까요? 남을위해나자신을 너무학대하지말라는의미일까요.생각하기나름이라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터 프랭클린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의사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희망이 없는 ‘삶’, 오로지 죽음만이 존재하는 삶을 통해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존엄성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시련인 경우: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며
시련을 피할 있는 시련인 경우 :시련의 원인,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인간이 취해야만 의미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차하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국 시련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시련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는 뜻 아닐까요? 그만큼 시련이라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면 이왕 겪을 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의미있는 시련이라는 뜻으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