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구실을 한 <매일신보>에 주필로 참여하여 그 해 12월 23일부터 1918년 7월 11일까지 친일 경향의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친일 행적을 둘러싸고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1915년 12월 26일 <매일신보> 1면에 실린 글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인용해 '조선 사람은 단체성이 없는 인종'이라고 개탄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하고, 1917년 순종의 일본 방문 때에는 '오늘 같은 성대한 일은 예전에 드물던 바 일선(日鮮, 일본과 조선) 융화의 서광이 빛나리라'라는 한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친일 불교단체로서 1914년 이완용 등이 발기해 조직한 ‘불교진흥회’의 간사를 역임하는 등 일본 총독부의 지배에 순응하고 다양한 형태로 협력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때문에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언론 부문의 해당자로 수록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