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5만원권에 신사임당이 들어가게(?) 됐나요?
궁금해서요. 만원권도 아니고 오천원권도 아니고 오만원권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리고 수많은 여성 위인 중에서 신사임당이 채택(?)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5만원권이 굳이 여성 인물로 선정된 것은 10만원권을 최고액권으로 하기로 계획을 한 상태에서 5만원권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성평등의 추세에 따라 계획상 최고액권이 아니었던 5만원권에는 여성 위인을 넣기로 결정하였고 공모를 한 결과, 신사임당이 선정됐다. 공모 결과 신사임당으로 선정되었는데, 정작 여성계에서도 신사임당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아들 이이를 훌륭하게 키워놓은 현모양처'이기에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하는 '자유롭고 적극적인 여성'과 맞지 않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 위인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구시대적 관점에서 현대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로서의 구시대적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럼 예술가로서 신사임당을 바라보면 되지않을까
또한 이미 오랫동안 지폐에 들어가 있던 퇴계 이황 - 율곡 이이에 이어서 또다시 성리학과 관련된 인물을 지정하느냐며 신사임당의 선정에 부정적인 반응들도 나왔다.
한편 신사임당이 전형적인 현모양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도 모르면서 나대지 마라'는 식으로 여성계를 비웃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여성계가 신사임당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퍼져있는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현모양처'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모양처로서의 신사임당'이 없었다면 신사임당이 '위인'으로 추앙받고, 그것도 화폐도안이 될 정도의 인물이 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수백 년간 신사임당은 '아들 이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남편을 보좌한 여성이자 모든 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로서 부각되어 왔고, 신사임당을 '화폐에 쓰일 정도의 위인'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결국 그런 현모양처로서의 이미지였다. 결국 역사적인 진실과는 별개로 '위인으로서의 신사임당'은 '전형적인 현모양처'에 불과하다.
여하간 까이고 있어서 선정 과정에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당시 부총재(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가 이순신과 율곡 이이의 성씨인 덕수 이씨 종손이라서 뽑혔다는 카더라라든지.
신사임당 초상화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일단 현재 오만 원권에 있는 신사임당 초상화는 이전까지 알려져 있던 신사임당 표준 영정과는 약간 다르게 생겼는데, 이는 신사임당 표준 영정의 작가인 이당 김은호가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초상화를 수정해야 했고, 화폐 도안이라서 정면을 바라보던 영정을 15도 정도 오른쪽을 바라보게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은 이종상 화백이 그리게 되었다.
5만원 인물 그림이 발표되자 박근혜를 닮았다는 말이 있었다. 해당 그림을 그린 이종상 화백은 "처음 듣는 생소한 이야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박 의원을 많이 흠모하는 어떤 환각증세가 아닌가 싶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유력하고 지지가 높았던 백범 김구가 정치권의 마음에 안 들었다는 기사나 47세에 사망한 신사임당이 30대의 초상화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신사임당이 포토샵도 하셨냐"는 비아냥도 존재한다.
한편 뒷면의 도안에 대해서도 약간의 논란이 존재하는데, 뒷면 도안인 월매도와 풍죽도가 대한민국 지폐 사상 최초로 세로 방향으로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지폐 도안이 모두 가로로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이 작품까지 가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애초에 작품 자체가 지폐 형태에 맞추기 위해서 매화 가지를 1/3 정도 잘라버리고, 보름달을 하늘 끝에서 1/2이나 끌어내린 편집본이다.출처: 나무위키 오만원권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러 논의 끝에 5만원권 도안 후보로 백범 김구, 장영실, 광개토대왕, 신사임당과 같은 인물이 거론됐고 결국 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간 화폐 도안으로 쓰인 인물들이 '조선 시대 이씨 남자' 일색이라는 여성계의 비판이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5만원권이 처음 나오기 전에 한국은행은 2009년 상반기에 5만원권 발행을 준비하면서 각계 전문가와 한은 부총재 등이 참여한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위원회에서 고액 지폐에 들어갈 인물 후보로 20명을 선발한 후 성인 남녀 1000명과 각계 전문가 150명을 대상으로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했는데요. 5만원권 후보였던 신사임당은 장영실과 끝까지 각축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나라의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5만원권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