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에 서양에서 일본을 황금의 나라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럽에서 대항해시대를 개척하며 전세계를 누비고 있던 시기에 일본을 황금의 나라라고 일컬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9세기 이후 수백 명 규모로 파견되기 시작한 견당사(遣唐使)들에게 1인당 수 킬로그램(kg)씩 사금으로 제조한 황금이 지급되었다. 이들이 중국에서 이 황금을 경비로 사용함에 따라 중국인들에게 일본은 ‘황금의 나라’로 알려지게 된다.
일본인들은 대체 포르투갈 등 서양인과의 교역에서 총포 등을 수입하는 대신 무엇을 팔았을까요? 그 답은 바로 '귀금속'에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금광과 은광이 크게 개발되었다가 17세기 중엽부터 쇠퇴했고, 그 대신 구리 생산이 증가했다. 광산 개발은 처음에는 다이묘들의 전쟁 준비를 위한 수입과 관련이 잇었으나, 곧 군사문제보다는 상품 유통용으로 더 큰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특히 중국 비단을 수입하는 데에 필요한 결제 수단으로 은이 많이 사용되었다. 16~17세기 일본은 '지팡그'라는 동방견문록의 지명 그대로 은과 금의 생산이 굉장히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귀금속이 많이 생산되면 당연히 화폐경제의 출현도 쉽고 더 나아가 교역을 통해 귀한 제품(비단과 총포 등)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죠.
그럼 일본의 은 수출 규모는 대체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 "대항해시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책 267 페이지 부분).
이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인상적인 숫자들은 눈에 띈다. 예컨대 16세기 말 효고현에 있는 이쿠노 은광에서 히데요시에게 보낸 은의 양이 1만 킬로그램이라던가, 니카타 현에 있는 사도 광산의 연 생산량이 6~9만 킬로그램 사이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들수 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코바타는 17세기 초 일본의 은 수출이 연 20만 킬로그램에 달했다는 추정치를 제시했다. 만일 이런 정도의 은 수출이 실제로 한 세기 지속되었다면 이는 상당히 중요한 경제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숫자는 부족하지만, 일반적으로 근대 초 일본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 2위의 은 수출국으로 자리 매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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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