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유에 관해서는 명백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까닭에 여러가지 야사들이 많지만 사실 이 전쟁의 원래 목적도 그렇고 전략적으로 봐도 명나라가 참전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우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이 명나라를 정복하여 대륙에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보낸 편지에도 정명향도 즉 명을 정벌할 것이니 조선은 명을 치는데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조선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여겨 바꾼 표현이 가도입명 즉 명을 치리가니 조선을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일본이 명나라를 침공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했습니다. 명의 만력제에게도 임진왜란은 호기였습니다. 후계자 문제와 본인의 태업으로 신하들과의 관계가 소원했으며 따라서 만력제는 위기에 처한 번국인 조선을 구원하고 감히 천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명분으로 천자로서의 위엄을 떨치고 권위를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임진왜란의 참전으로 명나라는 재정압박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이득도 있었습니다. 만력제 본인도 참전을 주장했지만 당시 병부상서인 석성의 적극전인 참전 주장이 있었습니다. 명은 참전은 했으나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고 질질 끌어 7년간 전투를 하게 만듭니다. 참전하여 승리한 전투는 평양성 4차 전투로 명나라군만 참전한 것이 아니고 조선군도 1만여명이 함께 싸웠기 때문에 명나라군의 승리라고만 볼 수 없으며 대부분 전투에서 소극적으로 임하며 전선이 조선을 넘지 않은 것에만 신경쓸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명나라는 초기에 3-4만이었던 병사를 7-8만명까지 증원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움으로써 조선군 중에 귀향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되었으며 일본의 강력한 육군을 명나라 육군이 대적하는 공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방으로 피난간 선조가 명군의 파병을 요청하여 처음엔 3000여명의 군사를 파병하는데 일본군에게 패배하게되고 다시 정세를 파악한 명군이 이여송이 이끄는 5만의 군사를 파병하면서 평양성을 탈환하고 파죽지세의 일본군의 세력을 억제시키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결국 선조의 파병 요청으로 인해 명나라 참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전쟁터가 자국으로 옮겨지는 것을 두려워해 참전 한 이유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