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이전 삼부회의가 무엇이며 왜 이후 시민들이 큰 반발을 사고 혁명을 일으키는건가요?
프랑스 혁명이전에 삼부회의라는게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당시 이 삼부회의이후 시민들이 크게 반말을 샀다고 하던데요. 이 삼부회의가 무엇이며 왜 당시 프랑스 시민들 계층이 크게 반발을 샀던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재정난은 심각했기에 1788년에 루이 16세는 왕실의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해에 삼부회를 소집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파리 고등법원이 삼부회가 1614년의 각 부별 방식으로 소집되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귀족계급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민중파는 왕당파나 귀족파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컸기 때문에 이런 자신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게 되었습니다.
삼부회는 1302년 프랑스 국왕 필립4세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분쟁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귀족, 고위 성직자, 시민 대표 등 신분별로 구성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부회는 주로 국왕의 세금 징수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소집되었으며, 1614년 마지막으로 소집되지 않다가 1789년 루이 16세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세를 위해 소집되었습니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소집한 삼부회에서는 표결 방식을 둘러싼 신분간의 대립이 큰 문제였습니다. 기존의 표결 방식은 각 신분별로 한 표씩 행사하는 방식인데, 이는 성직자와 귀족이 연합하여 평민을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에 평민 대표들이 머릿수 표결을 요구하며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성직자와 귀족은 이를 거부하고 결국 제 3신분은 국민의회를 결성하여 독자적으로 테니스코트 서약을 발표하면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