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왕들은 왕비보다 후궁들을 더 편애한다는 느낌이 들던 데 그 연유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사극을 시청하다 보면
국왕들은 왕비보다 후궁들을 더
편애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여, 그 연유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드라마의 극적인 내용들이 포함될 수 있기도 하지만 보통 왕비는 왕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왕실의 여러 어른들이나 부서에서 인사평가를 통해서 선택하는 것이기에 왕의 의견은 크게 작용되지 않죠. 하지만 후궁들의 경우에는 왕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왕의 성은을 입는다는 그런 것처럼 왕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이니 더 애정이 가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네요. 물론, 후궁은 워낙 여럿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왕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왕비는 쉽게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였기에 후궁이랑은 또다른 입장이긴 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군주의 가족 제도 또한 철저히 규범화되어 있었습니다.
왕비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책봉한 ‘중전’으로, 왕실의 정통성과 종묘사직의 계승을 책임지는 존재였습니다.
그만큼 왕비는 권위와 품격을 갖추어야 했고, 정해진 예법과 절차를 철저히 따라야 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틀 속에서 왕과 왕비의 관계는 일종의 공적이고 제도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 표현이나 자유로운 교류가 상대적으제한되었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후궁은 제도적으로는 왕의 첩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였습니다. 왕은 후궁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고, 후궁들 또한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인간적인 교감이 더 활발했습니다.
또한, 후궁들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왕에게 있어서 후궁은 단순한 애정의 대상 이상일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사극에서 후궁을 왕비보다 더 편애한 듯 보이는 것은 왕실에서 대를 잇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왕비가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면 후궁을 통해서라도 왕자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왕위 계승자가 후궁 소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후궁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왕실 내 권력 관계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왕비는 왕실의 공식적 대표로서 정치, 의례, 내명부 수장을 맡았으며 후궁은 왕의 사적인 애정 대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며, 사극의 극적 연출이 가미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