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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3.08.08

조선후기까지 데릴사위가 있었나요?

조선시대에 권율의 딸과 결혼한 데릴사위로 이항복이 있었고 이이의 아버지도 신사임당의 집에 데릴사위로 있었는데 데릴사위가 조선에서 보편적인 문화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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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0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사위 제도는 조선후기부터 차츰 사려졌다고 합니다.

    사위가 처가에서 혼인 전, 혹은 혼인 후에 일정 기간, 혹은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것으로 민며느리와 함께 한국의 고대의 혼인의 한 풍속을 데릴사위라고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데릴사위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장남의 경우에는 데릴사위제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 예물이라는 개념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합니다. 보통 차남 이하에 한해 데릴사위가 시행되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풍습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루어졌으나, 보통은 1~3년이 보통이었고, 그마저도 조선식 성리학 체계가 공고해진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현대에는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기껏해야 사흘에서 일주일 가량이 보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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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딸만 있는집에

    사위가 자기 집에서 정실의 자식이 아닌

    서출일 경우 첩의 자식일적에만 가능.

    또는 몰락양반가의 부모가 없는 경우 데릴사위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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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까지 데릴사위가 있긴 했으나 조선식 성리학 체계가 공고해진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데릴사위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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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외손봉사가 널리 행하여진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때까지도 데릴사위가 널리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래 이성불양(異姓不養)을 원칙으로 하는 양자제도가 널리 퍼지게 되자 데릴사위제도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상층사회에 국한된 일이었을 것이며, 하층사회에서는 민족항일기에 이르기까지 데릴사위제도가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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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 사위제는 고구려의 서옥제와도 비슷한데 조선 시대에도 행해 지던 관습이였습니다 .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거의 없어지게 된 혼인 관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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