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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교려니7946
사려니교려니794623.09.06

김구 선생의 암살을 지시한 세력은 누구인가요?

얼마전 너튜브 역사채널에서 김구 선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다루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안두희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신것인데요. 그런데 끝까지 안두희는 배후를 밝히지 않고 타살로 사망하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암살지시의 배후 세력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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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8구락부가 암살 사건의 진정한 배후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신성모가 내무장관에서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 군부와 경찰관계의 핵심분자들이 상호간의 정보 교류란 명목으로 만든 것이 88구락부였으며 김삼웅에 의하면 88구락부는 신성모 국방장관,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장은산 포병사령관, 김창룡 당시 방첩대장, 김태선 서울특별시청 경찰국장, 김지웅 국방부 헌병대 고문 등 군부와 경찰의 정보 관계 핵심들, 그리고 김준연 동아일보 논설위원 겸 한국민주당 총무간사, 장택상 외무장관 등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며 시국 문제를 논의해온 비밀그룹으로, 친일파 전봉덕 헌병사령관과 고문수사관으로 소문난 노덕술, 최운하 등 일제경찰 출신 등도 여기에 참여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일개 군대의 소위 직책 이던 안두희의 증언을 면밀히 분석하면 백범 암살사건은 안두희에 의한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 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적 차원의 범죄였습니다. 김구 암살에는 당시 장은산(張恩山) 포병사령관과 김창룡(金昌龍) 육군정보국 방첩대장, 채병덕 총참모장, 전봉덕(田鳳德) 헌병부사령관, 신성모 국방장관 등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고 이승만이 직접적인 지령을 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나 사건의 뒤처리에는 개입하였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어찌 되었건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 당했던 사건 당시의 정부는 한독당 내부 갈등에서 이 사건이 비롯되었다고 했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1992년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나왔다고 합니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자면 1차 배후는 포병사령관으로 안두희의 직속 상사 장은산이 암살을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군부와 더물어서 서북청년단 세력도 사건에 깊이 관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