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신라시대 왕가 서족 출신의 승려이자 태봉의 군주로, 신라 왕실의 서자로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난 후 유모가 피신시켜 죽음을 모면했고 이후 세달사로 피신해 승려가 되었습니다.
진성여왕 9년 궁예는 동해를 끼고 북상해 영서 지방으로 넘어와 저족, 성주, 부약, 금성, 철원 등 10여 군현을 점령해 세력 기반을 다졌고 지금의 강원도 전 지역을 장악한 궁계는 이듬해 철원을 자신의 도읍지로 삼습니다. 궁예의 세력이 급성장하자 패서, 즉 예성강 이북 지역의 호족들이 차례로 궁예에게 자신 투항, 세력이 강해진 것을 본 궁예는 나라를 세워 임금이 됩니다.
고려사에 의하면 집권 후반기에 스스로 미륵이라 자칭하며 관심법으로 인간의 생각을 꿰뚫어본다고 주장, 법봉을 사용해 가신들을 때려죽이는 증 광기를 일으켰다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모두 왕권을 갑작스레 강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신을 미륵이라 칭한 것은 혼란한 후삼국시대에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있던 미륵신앙을 활용해 자신을 신격화하여 제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고 관심법은 거기에 더해 딴 마음 안먹고 절대 복종하도록 호족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궁예의 관심법은 호족들에게는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공포 정치로 확대돼 보인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