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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5.07

고구려와 백제는 둘다 부여에서 나온 나라라 할 수 있나요

드라마 주몽에서 보면 주몽은 부여에서 있다 나중에 스스로 나와 고구려를 세우고 또 부여 있던 온조 비류가 한강으로 와 백제를 세우는데 그러면 둘 다 부여에서 기원한 국가로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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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는 왕권이 약하고 부족장의 권한이 강한 상태로, 느슨하게 연합해 있는 ‘연맹왕국’이다. 토테미즘에 근거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는 4부족이 있었고, 날씨가 추워 반은 농사짓고 반은 가축을 기른 ‘반농반목’의 형태로 경제를 꾸렸다.

    주몽, 부여의 모습을 고구려에 옮기다

    부여는 굉장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여에서 주몽이 내려가서 세운 나라가 고구려거든요. <주몽>이란 드라마 기억나세요? 그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부여와 고구려는 정치나 사회 모습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심지어 똑같은 것도 많아요. 그럼 부여의 기록을 통해 부여의 역사를 살펴볼게요.

    부족장들이 힘을 합쳐 부여를 세우다

    나라에는 왕이 있으며 벼슬은 가축의 이름을 따라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자, 사자라 칭했다.

    일단 위에서 계속 등장하는 글자가 있죠? ‘가(加)’라는 한자입니다. 부족장을 뜻해요. 이를 통해 부여는 왕과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는 4부족의 부족장들이 힘을 합쳐 만든 나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길게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항상 부르기 힘드니까 부족장들을 모두 ‘제’ 자를 써서 제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 우, 저, 구는 무슨 뜻일까요? 마는 말을, 우는 소를, 저는 돼지를, 구는 개를 뜻합니다(저가는 저팔계를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게 있죠? 동물의 이름을 통해 토테미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로 마가는 말을 숭배하는 부족인 거죠.

    부족장들이 지방 4곳을 다스리다

    제가들은 별도로 사출도1)를 나누어 맡아보는데 큰 곳은 수천 가(家)이며 작은 곳은 수백 가였다.

    부족장들(제가)은 각기 지방 4곳을 ‘별도’로 다스렸어요. 그럼 왕은 중앙을 다스리고 다른 부족장들이 왕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체적으로 각 지역을 다스렸단 얘기예요. 왕이 있으면 뭐해요. 부족장들이 각 지역에서는 왕 같은 존재였어요. 마치 학교에 교장선생님은 있지만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이 마음대로 반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거예요. 교장선생님이 아무리 자기 말 안 듣는다고 부글부글해도 소용없었단 얘기입니다. 자연스럽게 왕권은 매우 약했을 거라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 - 연맹왕국으로 성장하다 (이다지 한국사 : 전근대 편, 2015. 12. 11., 이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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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에서 태생된 국가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고구려는 주몽이 백제는 비류가 한반도 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건국하였으며 백제는 나라의 국호를 남부여로 부르기도 합니다. 고구려에도 부여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부여의 세력을

    고구려가 계승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한계파를 백제가 나누어 또 다른 나라를 건국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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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몽은 부여에서 탈출해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당연히 부여가 뿌리이고 부여의 문화와 고구려의 문화가 비슷합니다. 백제는 고구려 유리왕의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가 한강 유역으로 남하해 세웠지요. 비류는 인천에 온조는 서울에 자리잡았는데 온존의 나라가 성장해 백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백제의 뿌리도 한다리를 건너 부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제 석촌동 무덤의 경우 고구려 무덤양식과 같습니다.

    또한 백제 성왕 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남부여라고 칭한 데서 보듯 부여 계승의식 또한 뚜렷하게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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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를 건국한 왕실의 시조가 '하늘신의 자손'인 부여왕이나 고구려왕의 후손임을 드러내고 있다. 설화나 이야기가 부여를 기초로하기 때문에 부여의 후손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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