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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스러운노을941
영스러운노을94123.08.07

일본에 조선 후기 수신사를 파견하게 된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1800년대 후반 일본으로 '수신사'라고 하는 외교관들을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는 어떠하였고 수신사를 왜 파견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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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신사는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에서 일본 제국으로 파견한 사절단 입니다.

    1차 수신사는 1876년 2월 22일 김기수를 수신사로 임명, 그를 위시한 75명을 일본에 파견했으며 그들은 4월 29일 부산을 출발해 5월 7일 도쿄에 도착하여 20일간 머물며 메이지 덴노를 비롯해 산조 사네토미,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 주요인사들을 만나 일본의 각종 시설을 사찰하며 김기수는 기행문 일동기유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의 서구화된 일본의 모습을 소개하고 일본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습니다.

    2차 수신사의 경우 1880년 3월 김홍집을 수신사로 임명, 그들은 7월 6일 도쿄에 도착해 1개월간 머물다 8월 28일 귀국합니다.

    김홍집은 일본의 시설을 시찰하고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와 신문물 수입과 외교 정책을 건의, 이후 조선책략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과 위정척사운동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3차 수신사는 1881년 강화도 조약의 무관세 문제를 합의하기 위해 조병호를 일본으로 파견, 조병호는 일본으로 가는 도중 조사 시찰단 민종묵과 이헌영을 만나 관세에 관한 조선 측 안을 협의 후 11월 17일 일본 정부에 관세 자주권에 입각한 조선 측 해관세칙 초안을 제출하고 통상 장정 및 세칙 협상을 진행하지만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가 조병호에게 전권이 위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칙 협상을 보유시켜 조병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4차 수신사는 1882년 8월 30일 조선은 임오군란에 대한 책임 문제로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고 제물포 조약 5조에 의거해 박영효를 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임명해 일본에 파견합니다.

    그들은 4개월간 일본에 머물며 일본의 근대적 발전상을 확인하고 서구 외교관과 교섭을 통해 국제 정세를 파악했습니다.

    박영효는 일본으로 향하는 도중 태극기를 제작해 공식석상에 내걸었고 오늘날 태극기의 원형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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