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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무
수리무23.11.21

조선통신사는 일본에가서 무엇을 했나요?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다시 일본과 교류하면서 일본에 통신사를 계속 보냈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으로 간 통신사는 주로 무엇을 하고 돌아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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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후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한 것은 1607년부터 1811년 12 차례 파견되었습니다. 통신사 인원은 적게는 428명에서 많게는 504명이나 되는 큰 무리였습니다.

    그런데, 통신사는 외교 사절이기도 하지만 문화 사전이도 합니다. 일본으로서도 조선의 문물을 좀 더 받아들이고 싶어 요구가 많았고, 조선도 일본에 문화대국의 위용을 보이고 싶어 많은 인원 보냈습니다. 그래서 일행에는 일본인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외교에 밝고 학식과 문장으로 이름난 세 사신을 비롯하여 제술관(製述官), 서기(書記), 의원(醫員), 사자관(寫字官), 화원(畵員), 악대(樂隊), 심지어 마상재(馬上才) 등 한결 같이 문학적 재능과 기예로 당대를 대표하는 이들을 선발하여 보냈습니다.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하면 숙소에 머물다가 막부가 정한 길일에 따라 국서와 예물을 가지고 에도성에 입성합니다. 각지의 다이묘와 신하들이 도열한 연회장에 가 쇼군을 알현하고 국서를 전달했습니다. 통신사는 체류 기간 내내 융숭한 접대를 받았습니다. 머무는 동안 통신사의 관심이 매우 높아 일본인들은 조선인의 글씨나 그림을 지니면 액운이 달아난다는 믿음이 있어 통신사 일행으로부터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얻으려고 안달이었습니다.

    통신사는 존재만으로도 당시 일본인에게는 매우 신기한 구경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쇄국정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일반인의 해외 도항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의 왕래 일정에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는 5개월에서 8개 월이 소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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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하면 막부는 길일을 정하여 방문 일정을 통보하는데 그때까지 통신사는 숙소에 머물며 대기, 일정이 정해지면 통신사는 국서와 예물 리트스를 가지고 에도 성에 입성해 각지에서 온 다이묘와 신하들이 도열한 혼마루의 연회장에 가 쇼군을 알현하고 국서를 던달, 그 후 쇼군은 통신사와 면담하고 국서를 확인하고 조선에서 가져온 예물을 살펴본 후 통신사를 위한 연회에 참가, 일정이 끝난 통신사는 쇼군의 답서를 받을 때까지 에도에서 기다리며 다미묘나 로주들과 어울리다 답서와 조선으로 가지고 갈 예물이 나오면 대마도주와 함께 귀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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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끊었으나 에도막부의 도구가와 이예야스가 국교재개를 요청해왔습니다. 이에 조선은 막부의 사정도 알아보고 전란 때 끌려간 포로들을 쇄환하기 위해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1607년(선조 40년)에 강화를 맺었습니다. 1604년부터 1624년 3차례에 걸쳐 사명대사를 비롯한 사절을 화답 및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들의 주 업무는 일본과의 강화와 그 조건 이행의 확인 일본의 내정 탐색 조선 포로 및 유민 송환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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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 입니다.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구실을 담당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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