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12.16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 군자금은 어떻게 마련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는 독립운동을 활발히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항해서, 무력으로 혹은 평화적으로~

이런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거 같은데,

이런 군자금을 마련한 단체가 혹시 있는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여성들이 조직한 독립단체인 대한민국애회를 이끌었던 김마리아는 1919년 3·1운동에 앞서 일본 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의 주모자이기도합니다. 일본 유학중이던 그는 2-8독립선언문을 몸에 숨기고 국내로 들어와 전국의 교회를 방문해 3·1운동의 열기를 이끌어 내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김마리아 뿐만아니라 3.1운동에서 여학생들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들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919년 5월부터 약 3개월 간 이들은 회비로 747원을 모금해 300원 정도를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는데, 당시 미곡 1석에 45원 정도였으니 300원이면 쌀가마 7석에 달하는 크지 않은 금액이기도 했다고합니다. 애국부인회는 조직을 정비 모금에 힘쓴 결과 같은 해인 11월에 군자금으로 2천원 보낼 수 있었고, 일제의 엄중한 감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로 뜻을 지닌 여성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립운동 군자금과 같은 경우 비밀리에 모금을 하거나

    개인 등에게 지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군을 양성해야 하고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등 많은 군자금이 필요했습니다 .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지가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하였고 친일로 배를 불린 친일파들의 재산을 강탈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은행이 일제 경찰까지 대동하고 회령지점에서 용정출장로 15만원을 옮긴다는 첩보를 접하고 6명의 청년들이 탈취를 시도한 15만원 탈취사건도 있었습니다. 결국 밀정의 밀고로 실패했으나 당시 총한자루가 20-30원 했으니까 적게는 5천명에서 많게는 7500명이 무장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있어 독지가들로 부터 독립군자금을 기부받기도 했고, '독립의무금'으로 단체 기부를 독겨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때는 협박장을 발송하고 영수증을 교부하기도 했답니다. 또, 아편거래의 이익금 군자금으로 송금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