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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박새218
심심한박새21822.09.18

문익점이 고려시대 때 목화씨를 가지고 왔다고 했는데 원래 가져오면 안되었나요?

문익점이 고려시대 때 목화씨를 가져와서 의생활을 발달시켰다고 하는데요.

이게 위대한 업적?으로 남은 이유가 뭔가요??

원래 가져오면 안되는데 가져와서인가요? 아니면 가져올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가져와서인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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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화씨는 다른 나라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는 조목이 들어있었습니다. 목화씨를 갖고 국경선을 넘다 들키면 큰 벌이 내려졌기 때문이죠. 문익점의 잘 익은 목화씨 베개를 붓두껍 속에 넣어 감추고 봇짐을 꾸렸고 그대로 국경선을 넘어 고국을 향해 내려온 것입니다.

    공민왕 시대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따뜻하고 두꺼운 옷이 아닌 얇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추위에 벌벌 떨어야했습니다. 우리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긴 문익점이 따뜻한 옷을 입게 해주고 싶어하는 착한 심성 때문에 우리가 지금도 따뜻한 옷을 입고 추위를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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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가 목화씨를 금수품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문익점이 목숨을 걸고 밀반입했습니다.

    그러나 흔이 알려진 이 사실도 허구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시 원나라가 금수품목으로 목화씨를 지정할만큼 목화씨가 희소성과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목화가 널리 퍼져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2010년에 백제 유적에서 목화로 만든 직물이 발견되어 고려때 처음 목화가 들어와 면직물이 생산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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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익점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밭을 보고 목화를 고국으로 들여와서 키우면 백성들이 겨울에도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같이 갔던 시종에게 목화씨를 따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이후 실을 짜서 옷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대에 넣어 몰래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원나라에서 수출 금지 품목은 화약과 지도 같이 전쟁, 군사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익점의 전환적인 역할에 대해 목화씨를 가지고 온 지 100년이 지난 후 김굉필이라는 사람이 그의 공을 기리는 시를 쓰면서 그 내용에 ‘문익점은 남몰래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고 표현한 그 내용에 후대에 살이 붙어 붓대 속에 몰래 넣어 가지고 왔다고 와전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고려시대가 아닌 삼국시대에도 목화를 이용해 짠 옷감이 발견되면서 문익점이 최초로 들여온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대량 재배를 성공시키고 널리 확산시킨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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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화는 면의 원료로 서민의생활에 혁명적인 영향을 준 의재료입니다. 고려는 이 목화는 수입만 할 수 있고 생산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국 원나라에서 일종의 기술통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핵심기술을 지키려는 노력이 큰데, 그런 핵심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몰래 들여욜 수밖에 없었고 우리 토양과 기후에도 잘자랄까 의구심이 있었지만,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조선의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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